우리 농촌은 이제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융복합으로 이뤄지는 첨단기술농업을 지향하고 있다. 6차산업과 연계되는 창업농업과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미래농업으로 가는 데 청년들은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된다. 뿐만 아니라 농촌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농촌을 유지하는데도 청년들의 농업 창업은 필수 요소로 꼽히고 있다. 농촌의 무궁한 자원을 활용해 농업을 희망산업으로 가꾸는 데 역시 이들의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청년 농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영농 의욕을 복 돋아 주기 위해 농촌에 먼저 뛰어든 청년 농업인들에게 농촌·농업을 물어 봤다./

◆준비가 철저한 청년농업인
김제시에는 수박 장인이 되고픈 청년농업인 조진범씨가 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 농사일을 돕던 조진범씨는 중학교 때부터 "나는 부농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에 고등학교는 농고나 공고로 진학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농사일은 힘든 직업이어서 내가 맡을 테니, 너는 공부를 하라"며 조진범씨를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시켰다.
그럼에도 조진범씨는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농업 관련 서적들을 빌려 보며 농업에서 성공하는 길을 찾았다.
농업은 노력하는 만큼, 또 공부하는 만큼 수익률이 올라가고, 경험이 쌓일수록 수익이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농업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충분히 가늠해 본 것이다.
이에 조진범씨는 한국농수산대학교 채소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채소과를 선택한 이유는 조진범씨 아버지가 "식량은 내게서 배울 수 있으니, 학교에서는 원예를 배우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한 조진범씨는 학업에 열중함은 물론, 방학이면 육묘장, 종자회사, 시설하우스 등을 찾아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농업을 일찍 창업하려면 남 보다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또 농수산대학 2학년 1년 동안 실습장인 육묘회사에서는 파프리카, 토마토 등 대부분의 일반육묘를 배우고, 직접 시설하우스를 짓는 경험까지 했다.
또한 육묘장이 1년 동안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살피고 기록하면서 자신만의 조기 창업을 계획했다.

◆준비가 끝이 없는 농업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조진범씨는 3,966㎡(약 1,200평) 규모의 시설하우스를 지어 수박 농사를 시작했다.
수박은 생산 회전율이 빠르고 노동력에 비해 순익이 크다. 정식 후 곁가지치기 등 1개월 반 정도 노동력을 투자하면 3개월 만에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진범씨는 또한 1필지의 논을 구입해 콩 농사를 시작했다.
이밖에 7만9,200㎡(2만4,000평) 규모의 논에 벼, 보리, 배추, 시금치 등을 부모님과 함께 재배하며 경험을 쌓고 있다.
때문에 조진범씨의 1년은 무척 바쁘다.
2월 하우스 수박 정식 준비를 한다. 짚을 깔아주고 살충제와 살균제 처리 후, 비닐 멀칭과 관수 시설 등을 준비한다. 3월부터 하우스 수박을 정식하는데, 일반 수박, 씨 없는 수박, 검은 수박 등 품종에 도전하고 있다. 3월부터 6월까지 수박이 자라는 동안 5월 모내기와 논콩 파종을 하고, 6월 수박을 수확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수박을 정식한다.
여름 하우스 안의 높은 열기를 이용해 씨 없는 수박을 심는다. 이후 추석 전까지 수박을 모두 출하하고, 논벼를 수확하며, 배추를 정식한다. 11월이 되기 전까지 논콩도 모두 수확하며, 11월 중순~말 경 배추를 수확해 전주, 완주, 김제, 논산, 나주 등으로 절임배추를 판매한다. 마지막으로 시금치를 수확해 판매하면 1년 농사가 마무리된다.
조진범씨가 채소학과를 선택하고 비닐하우스 농업을 시작한 이유는 외삼촌의 영향이 컸다.
외삼촌(강길호)은 정읍에서 20년째 수박을 재배하는데, 지난해 수박 전국품질대회에서 1등에 오르고 '수박 장인'이 되는 등 조진범씨에게는 미래의 모델이다.
외삼촌에게서 같은 종자를 키워도 모두 다른 결과를 얻는 점 등을 배웠다.
김제와 정읍은 토질과 물이 달라 아직 김제에서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는 극소수다.
하지만 조진범씨는 김제에서 당당히 수박 시설재배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포전거래 가격이 크게 떨어져 조진범씨가 직접 수박을 수확해 정읍시 경매장에 출하했는데, 정읍시 수박과 경쟁하면서도 최고등급을 받았다. 가격도 통당 포전거래가격 4,000원이 아닌 1만4,000원씩 받았다. 이 때 유통의 효과까지 크게 경험한 조진범씨다.
이제는 시설 내 토질을 유기질 땅으로 변화시켜 더욱 품질이 향상된 수박을 생산할 계획이다.

◆김제 수박 선구자

조진범씨가 짧은 농사 경험만으로 수박 농사를 성공한 것은 아니다. 처음 수박을 배우고 농사를 시작했을 때 조급한 마음에 늦은 시기임에도 정식에 나섰다가 농사를 망친 경험도 있다.
이 때 "농업은 준비가 절반이구나"하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겼다. 이때부터 모든 농사에서 준비 과정을 철저히 했고, 성공적인 수확이 뒤따르자 점차 자신감을 갖게 됐다.
또한 외삼촌으로부터 "좋은 수박을 만드는데 크고 좋은 시설하우스가 필요한 게 아니구나"하는 점도 배웠다. 대신 수박 병해충 방제 방법, 토양 관리, 잎 색깔 구분법, 생장에 필요한 영양소 공급 방법, 물이 필요한 시기 등을 보고 배우면서 남들과 다른 수박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조진범씨는 아직도 배울게 많다는 걸 안다. "농업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업고, 방법도 많다"는 게 조진범씨의 생각이다.
조진범씨는 수박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가면서 올해 3,300㎡(1,000평) 정도 시설하우스를 늘릴 계획이다.
망고 수박이나 검은 수박 재배에 도전하려는 계획도 세웠고, 땅에서 수박을 유인해 그릇 안에서 재배할 수 있는 기술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반응이 좋았던 절임배추 재배면적을 늘려 전국적으로 납품해 보고, 추후 김치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도 타진할 계획이다.
나중에는 수박하우스를 1만평 정도 늘리고, 김제에서 수박 작목반을 만들어 김제 수박을 유명 제품으로 만드는 꿈도 꾸고 있다.
이밖에 애플수박을 재배하면서 체험농장을 운영하거나, 수박을 가공해 쥬스로 판매하는 등 유통과 체험농장 운영 계획도 갖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외삼촌을 본받아 수박 장인이 되는 게 조진범씨의 가장 큰 목표다.
30~40대에 고향 김제로 귀농한 청년들이 조진범씨의 수박 농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과 함께 조진범씨는 마을 청년농업인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청년농업인 유인해야

조진범씨는 청년 농업인이 농촌에 꼭 필요하며, 이들이 우리나라 농업을 이끌어갈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진국들은 농업분야에서도 선진국이며, 동시에 농업에 많은 자본을 투자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과 농촌이 도외시되면서 선진국의 농업·농촌 수준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농업의 연속성에서도 선진국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속 발전시키려면 이제부터라도 청년농업인을 보다 많이 양성해야 한다는 게 조진범씨의 주장이다.
농촌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해 각종 농업 재배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농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확대된다면 청년층이 농촌에 들어올 확률이 높아질 것이란 주장이다.
아울러 일반 도시민들도 농업을 불루오션으로 여기고 귀농귀촌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란 게 조진범씨의 생각이다.
이와 함께 농촌 역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만큼, 농촌지원정책 결과는 희망적이란 게 조진범씨의 판단이다.
또한 농업 유통구조의 모순점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 정책의 하나로 꼽았다. 기존 농업인들도 유통 때문에 농업 소득에서 크게 불이익을 받는데, 청년들은 농업유통 생태계에서 더욱 열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김제시가 평야지역이다 보니 이곳 청년농업인이나 농업후계자들은 첫 도전 품목으로 벼농사를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다. 벼 농사는 100% 기계화된 만큼 배우기도 쉽다. 하지만 귀농인이나 농업후계자들이 농지를 빌리다 보면 벼농사 소득으로 대출 이자를 갚기도 힘든 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청년농업인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교육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진범씨는 "농촌으로 청년들을 유인하려면 정부 지원도 그만큼 다양해져야만 한다"면서 "도전자들 역시 준비를 철저히 해야 농촌에서의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후배에게

조진범씨는 농촌 농업에 도전하려는 후배들에게 "작물 공부에 먼저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농업은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며, 각종 경험이 재산인데, 무작정 수학문제 풀듯이 농업에서 정답을 찾으려고만 하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진범씨 본인 역시 딸기 농사를 공부하면서 오랜 경험을 갖춘 고수들도 힘들어하는 것을 봤다. 농업엔 정답이 아직 없다.
또 농촌에 보다 쉽게 정착하려면 그만큼 경험을 쌓고 처음 선택할 품목에 신중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에 더해 조진범씨는 "농촌에서 네트워크 형성에 노력하라"고 강조했다.
조진범씨는 "나는 4H에 가입하고 있는데, 요즘 한농대 신입생들은 4H에 가입하려 하지 않아 걱정이다"고 말한다.
현재 김제시의 경우 청년농업인 39세까지 모두 4H에 가입하고 있는데, 이들과의 교류 없이는 농촌 정착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층의 개인주의적 생각,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 젊음의 특권은 알겠지만, 농촌에서 교류가 부족하면 계속 도태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는 설명이다.
조진범씨는 "특히 농촌에서는 혼자만으로 잘 살기가 힘든데, 혼자를 고집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봤다"면서 "농사 경험, 방법, 인적 재산 등이 모두 교류에서 발생하며, '시골에서는 인적 네트워크가 곧 힘'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황성조기자, 전라북도농업기술원 취재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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