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호 한국은행 전북본부 기획조사팀장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미국의 저신용자에 대한 주택자금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세계에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갈 정도의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에서는 2009년에 실업률이 10%까지 치솟았고 대출금 상환 연체로 약 300만 채의 주택이 압류되었다.
전세계의 총생산은 IMF 통계가 시작된 1980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으며 무역거래는 전년에 비해 10%나 감소하였다. 심지어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국가부도 직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파장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자산 거품의 붕괴가 전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통화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Greenspan 등 당시 미 연준의 고위급 인사들은 주택시장 침체의 여파를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길고도 지난했다. 경기침체 국면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장기금리를 낮추기 위해 양적완화의 규모를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늘려나갔고, 정책금리 또한 제로 수준까지, 심지어 몇몇 국가에서는 마이너스 수준까지 인하해야 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 다행히도 세계경제는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며 순항 중이고, 이를 배경으로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가운데 보유자산 규모를 줄여 나가며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금융위기에 드러난 금융시스템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도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Greenspan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한 인간의 ‘근원적 탐욕’(innate greed) 때문이든 아니면 경제학자 민스키가 주장한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내재적인 불안정성 때문이든, 앞으로도 우리는 숙명처럼 크고 작은 금융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금융위기 연구의 대가인 Kindleberger의 예견이 맞다면,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아무리 강화한다 해도 투기적 동기가 강한 경제주체들은 규제망을 피해 조달한 자금으로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융위기의 발생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어렵겠으나 금융위기의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들을 활용하여 금융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역사상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경제주체의 과다한 차입에 의해 자산 수요가 팽창하다가 경제환경 및 정책기조의 변화로 자산가격이 급락하는 ‘민스키의 순간’이 찾아오면서 부채가 부실화되는 공통점을 띤다. 이는 정책당국이 ‘자산가격 안정’에도 정책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자산시장이 과열되어 있는지 여부를 사전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안정시키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부정적 여파를 상기해 보면 이를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가계, 기업 등 일반 경제주체 또한 금리환경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하지만 쉽게 간과되는 사실을 명심하고 금리 상승의 충격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부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던 미국 가계의 과다 차입은 저금리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관성적 예측에도 일부 기인한 것으로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가 CDO와 같은 신종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정책담당자들은 국제금융시장의 복잡한 연결망을 통해 유통되는 금융상품에 잠재된 리스크를 평가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막대한 부채 수준 등 몇몇 징후들이 새로운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중국의 부채는 GDP의 두 배를 뛰어 넘은 지 오래인데, 저우샤오촨 전 인민은행장도 중국이 ‘민스키의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우려스러운 수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경기 개선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강해지면서 신흥국으로의 자금이동 규모가 확대되어 왔다.
또한 향후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금리 상승이 가계의 소비성향과 주택매입수요에 미칠 영향은 초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고 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비해 무척 클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다만 현재로서는 이러한 요인들이 금융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 주를 이루고 있다.
10년 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가는 안정된 가운데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성장세가 지속되던 미국 경제의 황금기에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기만족에 빠진 데서 그 싹이 움텄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경기에 순풍이 불고 다양한 위험들이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는 지금,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금융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가장 경계해야할 시점이라는 점이 우리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고통을 감내하며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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