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촌은 기존 농업과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융복합으로 이뤄지는 첨단기술농업을 지향하고 있다. 6차산업과 연계되는 창업농업과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미래농업으로 가는 데 청년들은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된다. 뿐만 아니라 농촌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농촌을 유지하는데도 청년들의 농업 창업은 필수 요소로 꼽히고 있다. 농촌의 무궁한 자원을 활용해 농업을 희망산업으로 가꾸는 데 역시 이들의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청년 농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영농 의욕을 복 돋아 주기 위해 농촌에 먼저 뛰어든 청년 농업인들에게 농촌·농업을 물어 봤다.

◆고은영농조합법인

익산시 황등면 고은영농조합법인 서상원(50) 대표는 황등면 100여 농가가 참여하는 들녘경영체 운영자로서 250ha(약 75만평)의 수도작(벼) 생산을 책임지고 있으며, 본인 스스로도 약 50만㎡(약 15만평) 벼농사를 짓고 있는 농업 전문가다. 서상원 대표의 농업에 대한 생각은 일본 농업을 체험하며 크게 바뀌었다. 젊음을 바쳐 시설에 투자하고 약 20ha(6만평) 벼농사를 짓고 있던 시절이지만, 농업은 자신의 대에서 마무리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본 농업이 대를 이어 발전하면서 국가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한 서상원 대표는 우리나라 농업 역시 대물림 농업에 희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최근 급변하는 우리나라 농업 현실을 감안할 때 후계농의 미래 성공은 더욱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에 서상원 대표는 농업을 규모화 및 현대화하는데 투자하고, 축산업 및 체험사업에도 도전하는 한편, 아들 서민수씨가 가업을 잇도록 설득해 나갔다.

◆농업 금수저

서민수(23)씨는 이런 부친의 아래서 가업을 물려받고 있는 농업계의 '금수저'다.
고은영농조합법인 기술부장이기도 한 서민수씨는 어릴 적 아버지 농사 및 축산업 일을 도운 경험은 있지만, 고등학교 진학 시절 음악이 좋아 수도권에 있는 예술고를 택했다. 하지만 금품을 요구하는 예술고의 실상에 실망한 아버지가 농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길 희망했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는 바람에 결국, 공고에 진학하게 됐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설득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농업이 결코 사양 산업이 아니며, 장차 규모의 농업을 완성할 경우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설명에 서민수씨는 농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공고 기계과에 입학하면서 농기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학습에 재미가 붙자 줄곧 내신 1등급을 유지했다. 이후 3년제인 한국농수산대학교에 들어가 대가축(한우)을 배웠다. 2016년 한농대를 졸업한 서민수씨는 후계농임을 인정받아 아버지의 일부 사업을 승계해 7년 의무사업을 시작했다. 서민수씨는 한우 50두를 혼자서 기르며, 벼농사도 약 4ha(1만2,000평)을 책임지고 있다.
서민수씨 농장은 가족농으로 구성돼 장점이 많다. 아버지가 크게 벼농사를 짓고 있고, 작은아버지가 정미소를 운영해 고품질 쌀을 생산한다. 또 정미소에서 나온 부산물들은 서민수씨가 기르는 한우들의 사료로 사용되고, 왕겨는 바닥재로 깔아주는 등 자체소비가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축사에서 나온 분뇨는 논에 비료로 쓰이고 있으며, 수도작에서는 2모작을 통해 볏짚과 라이그라스 등 조사료를 소들에게 공급한다. 이처럼 가족 안에서 농업이 상호 보완되니 원가절감 및 경쟁력 상승에 도움이 된다.

◆농업 적응기

서민수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농업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교 때 성적도 상위권에 들었다. 이 때 "적성에 맞다.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정작 농업을 승계 받아 가축을 기르는 경험을 쌓아갈수록 배워야 할 것이 더욱 많음을 알게 됐다. 소들이 사료를 거부할 때도 아프거나,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신체에 이상 징후가 나타날 때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는데, 이를 파악하는데도 어려움이 컸다. 이때서야 서민수씨는 "이전에는 아는 게 적어서 자신감만 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농산업을 영위하며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 역시 사회 초년병으로서는 힘든 부분이다. 자신은 경험하거나 갖춰진 게 없는데, 상대방에게 부탁할 게 훨씬 많은 입장에서 상대방 성격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는 어차피 적응하고 시간이 흘러야 해결되는 부분이어서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또한 돈 관리도 서툴렀다. 어릴 때는 부모님에게 받는 용돈을 소비하는 게 전부였다. 이제는 1년에 한번 크게 송아지 판돈이 입금되는데 어떻게 관리할지부터 난감했고, 사료를 구매하거나 일반 경비를 지출할 때 경험이 적어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출해야 할 지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통장에 쌀 판매대금과 직불금 등 첫 수익금이 입금됐을 때 "이제는 나도 농부구나"하는 생각에 기분이 우쭐했다고 한다.

◆농촌에서 청년 농부

소규모 농가는 작은 땅에서 큰 수익을 내야 한다.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서민수씨는 다행히 대농을 아버지로 뒀다. 미국 농가를 체험할 당시 기계화와 규모화를 이루면 경쟁력 있는 농산업을 운영할 수 있음도 알게 됐다. 대농은 가격을 좌우할 수 있으니 다른 농가보다는 쉽게 농업에 정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서민수씨는 한농대 2학년 시절 일반 축산농가에서 실습을 제대로 경험했다. 각종 삽질과 분뇨 치우기, 거름 만들기, 사료 공급(사양 관리), 질병 관리(진단) 등 기본기를 굉장히 많이 배웠던 시절이었다.
이런 경험이 현재 축산업을 운영하는데 매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마을에서도 서민수씨는 금수저 혜택을 톡톡히 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마을 어른들에게 봉사하는 서민수씨의 노력도 작용한다.
마을 할아버지, 아지씨들은 서민수씨를 자주 찾는다. 요즘은 농기계 작업이 필요한 농사가 많기 때문이다.
서민수씨는 마을에서 만큼은 농기계 전문가다. 또한 트랙터 5대, 콤바인 1대, 스키드로더 1대 등을 보유하고, 대여할 수 있는 대부분의 농기계도 다룰 수 있으니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서민수씨는 "공고 기계과에서 관심을 쏟았던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면서 "농기계를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들이 찾으면 달려가 무료봉사를 해드린다"고 말했다. 그만큼 마을에서 인기가 높고, 칭찬이 많으니 적응에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청년농부의 장점

서민수씨가 느끼는 농촌에서의 청년농부는 현재 떠오르는 주도세력이다. 이들이 농촌의 미래를 짊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서민수씨는 "익산시 청년농업인 4H 연합회에서 30명의 젊은 회원이 활동하는데, 이들이 각 마을의 농산업을 선도적으로 이끄는 느낌이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오랜 동안 관례적 농업을 이어왔던 할아버지, 아저씨 세대와는 확연히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최근까지 변화는 농약 몇 가지 바꾼 게 전부라면, 청년농업인들은 농업의 기술적 변화를 모색하고, 트랜드를 반영해 농산물 생산의 방향을 결정하는 단계까지 빠르고 거칠 것이 없다. 선배들로부터 농촌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글로벌 농업 현실에 맞게 재배시스템 변화를 시도하고, 새농기계, 새농법, 새종자 시도와 포장·판매·유통까지 기성세대가 어려워하던 모든 것에 도전한다.
서민수씨 역시 농협에서 보급하는 종자 대신 일부 수입종자까지 모아서 벼농사에 활용한다. 모 유통업체에서 성공한 종자도 사용하는데, 아직 종자에 이름도 없는 게 많다. 하지만 수확량이 많고, 소비자들이 품질을 인정하기 때문에 재배를 시도한다.
서민수씨는 "우리는 청년이기 때문에 무모한 것에도 도전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농촌 고령농들이 땅을 내놓고 은퇴를 준비하는 추세인데, 적당한 수준의 청년들이 이를 이어받아야 농촌이 유지될 수 있음을 마을 어르신들도 잘 알고 돕는다.
이와 함께 서민수씨는 수도작에서 ‘삼고삼저’ 운동을 실현하고 있다. 생산량·쌀 품질·토질을 높이고(삼고), 비료·농약·생산비를 줄이는(삼저) 운동이다. 아울러 아버지와 함께 오색미(녹미, 흑미, 찰현미, 찹쌀, 홍미)를 선물세트로 포장해 판매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연간 1억원의 조수익을 내고 있다.
이밖에 서민수씨는 추후 재배에 성공한 쌀을 가공·판매하고, 한우 정육센터 및 식당을 운영할 계획이며, 로컬푸드에도 납품할 계획을 세웠다.
서민수씨는 "최근 송아지를 판매했는데, 아쉽게 경매가 2위를 차지했다. 건방진 생각이지만, 잘 키우는 방식을 찾은 것 같다. '소가 덩치가 크다'는 말을 들었으니, 다음은 '품질도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후배에게

서민수씨는 "제가 새파란 농촌 후배여서 누구에게 조언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느낀 점 몇 가지는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몇 년 전 쌀농사를 희망하는 학생이 서민수씨 농가를 찾은 적이 있다. 이 학생에게 서민수씨는 "10~20년 후 보람을 찾겠다는 각오라면 도전해도 좋다"고 말했다.
농업기반이 없는 도전자는 특히 힘든 게 쌀농사다. 후계농으로 인정받아 국가에서 2억원의 영농자금을 대출해준다고 한들 논 2필지 사면 끝이다. 트랙터, 콤바인, 이양기 등이 필요하고, 기타 운영자금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농업기반을 닦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뼈를 묻을 각오가 아니면 10~20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밭작물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땅에서 큰 수확이 가능한 밭이나 시설하우스에 도전하는 게 쉬워 보이지만, 1에서 100까지를 모두 챙겨야 하고, 몸도 고달프다.
더욱이 이 모든 것을 떠나 제대로 된 준비과정이 없다면 시행착오에 빠지기 쉽다.
서민수씨는 "그럼에도 각오가 다져졌다면 도전하라. 그것이 청년이다"고 말했다./황성조기자, 전라북도농업기술원 취재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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