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경대에서 바라본 전주시가지
 

전북 1000리 길 중 전주의 두 번째 길인 천년전주 마실길은 해안, 강변, 산과 들, 호수 등 4개 테마 중 ‘산과 들’길이다.

억경대, 만경대, 완산칠봉, 다가공원 등 전주시가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딱 좋은 최적의 장소가 두루 있는 구간이다.

견훤이 쌓은 100년 역사의 남고산성과 남고사, 충경사 등 다양한 역사와 문화 자원이 분포돼 전주 역사의 길이라고도 한다.

시외 먼 곳이 아닌 도심 속에서 역사와 문화, 생태자원을 모두 보고 듣고 느끼는 ‘천년전주 마실길’ 코스를 따라 마실을 나가보자.<편집자 주>

천년전주 마실길은 총 12km로 이뤄졌으며 5시간 코스이다. 국립무형유산원을 시작으로 산과 들길 따라 충경사, 완산공원, 다가공원까지, 길다면 긴 코스이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면 12km는 금방이다.

한옥마을 남쪽 끝자락에서 전주천 너머로 보이는 국립무형유산원은 지난 2006년 2월 27일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으로 세워져 국립무형유산원으로 명칭이 변경돼 2014년 10월에 정식 개원했다.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의 무형문화 유산을 비교하고 우리 무형문화를 보존·계승·발전시켜 온 분들의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다.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공연도 매주 진행된다고 하니 멀리 갈 것 없이 이곳을 찾아 공연을 즐겨도 될 듯하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나와 오른쪽에 위치한 춘향로를 따라 걷다보면 두 번째 코스인 좁은목 약수터가 나온다.

마실길 코스의 본격적인 시작은 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남원 방면에서 노루목고개를 넘어 전주로 들어오는 관문을 좁은 목이라 하여 ‘좁은목 약수터’라고 불린다.

통일신라 시대 후백제군이 적군을 방어하던 진지였으며 적진의 동향을 훤히 살필 수 있기 때문에 군사적 요지였다.

이 물을 마시고 병을 고쳤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내려올 정도로 물맛이 유명해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였다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남고산성은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쌓은 산성이다.

고덕산성이라고도 불리며 후백제의 견훤이 도성인 전주를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고 해 견훤성이라고도 한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남고사 도착 전 대승사를 가는 샛길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주둔지였다는 대승사.

대승사를 지나 오르다보면 억경대가 나오는데 옛사람들이 억만 가지의 경치가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행으로 맺힌 땀을 잠시 시킨 후 또 오르다보면 남고사가 나온다.

해질녘에 들리는 남고사의 저녁 종 소리를 남고모종이라 해 전주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남고사를 뒤로한 채 이정표를 따라 만경대로 향했다.

만경대는 억경대와 마찬가지로 만 가지의 경치가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고려 말 정몽주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만경대에 올라 전주시가지를 바라보고 있자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

남고산성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만경대 암각서 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지은 우국시가 새겨져 있는 벼랑이 있다.

일명 ‘망향가’ 라고도 불리며 1380년 9월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승리를 하고 개선장군이 돼 돌아가던 중 조상의 고향인 전주에 들러 종친을 모아 잔치를 베풀면서 자신이 고려를 뒤엎고 새나라를 세우겠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내심을 간파하고 홀로 말을 달려 만경대에 올라 임금이 계신 북쪽을 바라보며 시를 울었다고 전해진다.

만경대에서 내려와 남고사를 지나 마을길로 내려가면 이정란의 공적을 기려 세운 충경사가 나온다.

이정란은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왜란이 일자 의병을 모아 전장에 나가 전주를 지켜냈다.

이러한 공의 용기와 충정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순조 때 충경공의 시호를 나라에서 내렸다.

오늘날 전주시를 동서로 가로지른 도로를 ‘충경로’로 명명한 것은 충경공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충경사를 나서 천변길을 따라 이동하면 곤지산 초록바위 설명 팻말과 곤지산 비석이 보인다.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곤지산은 전주천에 깊숙하게 내리뻗은 지형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울창한 숲이 조성돼 있고 빛깔이 푸르스름해 붙여진 초록바위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죄인을 효수하던 곳으로 조선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던 순교지였으며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이 참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완산칠봉은 팔각정이 위치한 주봉인 장군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두 갈래의 산줄기를 내칠봉, 서쪽방향으로 흐르는 줄기를 외칠봉이라 해 13봉우리가 있다.

동학농민운동 때 격전이 벌어졌던 장소로 지금은 전나무 삼나무 측백 등 숲이 우거진 시민공원으로 가꿔져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이곳에 진을 치고 관군을 공격해 입성하는 성과를 거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후 농민군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동학농민전주입성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옛부터 도시를 보호하고 있는 지맥을 갖고 있어 산의 형세나 모습을 훼손하면 큰 재난을 겪는다고 해서 옛 역사 그대로 보존돼 있는 곳 중 하나다.

벚꽃, 철쭉 등 봄꽃들이 만개해 동산이 온통 빨간 빛으로 물들어 꽃 터널을 이루는 4월부터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의 인파가 몰릴 만큼 유명하다.

장군봉에서 용두봉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있는 ‘금송아지 바위’도 명물이다.

옛날 금사봉 아래 골짜기에 송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골짜기를 한발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산신령의 경고를 어기고 옥녀의 꼬임에 빠져 옥녀봉에 오르자 돌로 굳어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용머리고개는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어 이름 지어졌으며 용이 승천하지 못한 한을 품고 몸부림치다 그대로 누워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뒤 관군과 완산전투를 벌인 곳으로 남쪽의 기운들이 다가산, 화산공원으로 이어져 오목대보다 더 큰 기가 뭉치는 명당으로 알려져 일제가 우리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끊어놓았다는 설도 내려오고 있다.

마지막 코스인 다가공원은 예로부터 수목이 울창해 물에 비치는 바위의 절경이 유명하다. 5월이면 벼랑에 하얀 꽃송이가 피어나는 이팝나무 군락은 전주팔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장관이다.

정상에는 일제 강점기 때 신사가 있었던 곳이며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만든 길 즉 참궁로가 있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1937년 신흥학교와 기전학교가 폐교되는 아픔도 겪었다고 한다.

다가공원에서 하산하면 천양정이 나오는데 ‘버들잎을 화살로 뚫는다’라는 뜻으로 무예의 수련장이었다.

다가공원을 거쳐 다가교 아래에서부터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길었던 여정이 마무리 된다.

앞으로 다가올 완연한 봄부터 완산공원의 겹 벚꽃들이 만개할 때, 혹은 땀이 주르륵 흐르는 여름까지 어느 때라도 좋을 것 같다.

자연과 역사를 즐길 수 있는 ‘천년전주 마실길’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도란도란 좋은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하미수 기자·misu7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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