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리산은 쉽지 않다. 특히 전북지역에서 거리가 가까워 접근하기 쉬운 백무동이나 뱀사골 지역은 지리산 북쪽이어서 겨울이면 더욱 춥다. 대신 남쪽인 중산리나 거림 쪽은 비교적 따뜻하다. 이 가운데 청학동에서 출발하는 삼신봉은 난이도가 낮은 등산 코스인데다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을 한 눈에 관망할 수 있어 많이 찾는다.

  삼신봉 등산 시작 지역은 청학동이다. 해발 800m의 지리산 중턱에 위치한 청학동은 도인촌으로 유명하다. 도인촌은 ‘儒佛仙三道合一更正儒道曾’라는 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유교를 근간으로 하되 ‘유교, 불교, 선도와 동학, 서학을 하나로 합하여 큰 도를 크게 밝혀 경사도 많고 크게 길한 유도를 다시 일심으로 교화하는 도’라는 뜻이다. 전통 의복, 가옥, 생활풍습, 서당 등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생활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었던 지역이다. 전설로는 청학이 많이 노닐던 곳이라는 유래를 가진 곳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묵객들이 삼신봉을 중심으로 한 살기 좋은 곳, 즉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바로 그런 곳이란 느낌이 들게 하는 산세와 물줄기를 가지고 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거하던 곳이다.

  청학동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등산로로 접어든다. 완만한 길을 따라 가다 보면 군데군데 얼어있는 길이 나타난다. 조금씩 흐르던 계곡물이 얼어 빙판을 이뤘다. 장난삼아 미끄럼도 타본다.
  국립공원 코스 난이도에 따르면 그냥 보통 수준의 길이다. 크게 힘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마주치는 미끄러운 구간을 조심해야 한다. 삼신봉을 700m를 남겨 놓은 지점에 작은 샘이 있다. 꽁꽁 얼었다. 옆에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로 얼음을 깨보려 하지만 꿈쩍도 않는다.
  여기를 지나면 이 코스 가운데 가장 가파른 길이 300m 정도 이어진다. 숨이 찰 때쯤이면 삼신봉과 외삼신봉이 갈라지는 갓걸이재에 도착한다. 겨울바람이 매섭다. 여기서 삼신봉까지는 400m. 나뭇가지 사이로 천왕봉이 보인다. 하지만 높은 구름이 산 정상을 감싸 안고 계속 흐른다. 조망이 쉽지 않다. 삼신봉으로 길을 재촉한다. 삼신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30m 가량 가면 안내판이 설치된 삼신봉이다.  

 

삼신봉에 오르면 서쪽의 노고단으로부터 동쪽의 천왕봉까지 지리산의 주요 봉우리들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다. 삼신봉은 정상에서 북쪽으로는 세석평전, 서쪽으로는 불일폭포-쌍계사로 갈 수 있는 지리산국립공원 탐방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삼신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종주능선’ 안내판에는 노고단에서 반야봉~토끼봉~벽소령~촛대봉~제석봉~천왕봉~중봉~써리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의 봉우리 이름이 나열돼 있다.
  성삼재에서 시작해 천왕봉까지 지리산을 종주해 본 사람들이라면 지리산 주능선에 대한 기억들이 남다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픈 발과 무릎으로 천왕봉을 향해 걸었던 28km의 길을 한 눈에 바라보는 감격쯤은 느껴볼 만하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높낮이가 큰 차이 없는 길이지만 음지에는 눈이 얼어 있어 안전사고에 조심해야 한다. 1㎞ 정도가면 내삼신봉이다. 해발 1,355m로 3개 삼신봉 가운데 가장 높다. 마침 지리산 봉우리를 덮던 구름이 살짝 비켜난다. 겨울 지리산의 위용에 숨이 막힌다. 청학동 출발점에서 약 3.4km 거리다. 쉬는 시간 합해 2시간이면 충분하다.
  내삼신봉을 넘어가면 쇠통바위를 지나 상불재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서쪽은 쌍계가 방면이고 반대로 가면 삼성궁으로 가는 길이다. 상불재부터 삼성궁의 구간 자연스러운 돌길 대부분이 완만한 코스다. 삼성궁은 건국시조인 단군조선을 모시고 고조선 시대의 솟대 문화를 재현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단군사상숭배 요람지로 알려져 있다.
 

삼성궁 앞 대형 주차장은 최참판댁으로 유명한 악양면으로 넘어가는 회남재 입구다. 대형 차량은 진입이 어렵다. 이 고갯길은 하동시장·화개장터를 연결하는 산청·함양 등 지리산 주변 주민들이 이용하던 길이었다. 회남재라는 아름은 조선시대 남명 조식(1501년∼1572년)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산청군 시천면 덕산마을에서 회남재 일원이 명승지라는 말을 듣고 1560년 이곳을 찾았다가 돌아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남재 숲길’은 하동군이 2014년부터 지리산 청학동에서 소설 토지의 무대 최 참판댁을 연결하는 힐링 관광코스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하동군에서는 청학동 삼성궁∼회남정(회남재 정상에 있는 정자)∼악양면 등촌 청학선사 구간 편도 10㎞, 삼성궁∼회남정∼묵계초등학교 구간 편도 10㎞, 삼성궁∼회남정∼삼성궁 구간 왕복 12㎞ 등 3개 코스에서 ‘지리산 회남재 숲길 걷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차량으로 이동하다 도착한 회남재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회남정이다. 악양 벌판과 멀리 섬진강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돌아오는 길 악양 식당에서 재첩회와 재첩국으로 산행을 마무리 짓는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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