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내가 처음 ‘도시’를 경험한 곳이 전주이다. 초등(국민)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서학동 당숙 집으로 놀러가면서이다. 당숙집과 전주교대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었다. 6촌들이 시내 구경을 시켜주었다. 다리(싸전다리)를 건너 시장(남부시장)을 둘러보고 ‘큰 대궐문’을 통과하여 도청(중앙동)까지 갔다. 방학이 끝나고 미술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방학 동안 가본 곳이나 가장 신났던 일을 그려보라고 하였다. 나는 도화지에다 ‘2층 대궐문’을 크고 진하게 그렸다. 선생님이 “이곳이 어디이니?” 물었다. “전주 남대문요!”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자, 선생님은 “남대문이라 아니라 남문이야!”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어쨌든 그 그림은 ‘우수작’ 가운데 하나로 뽑혀 한동안 교실 뒤 벽면에 붙여졌다.
‘도시’에 반한 나는 부모님을 조르고 조른 끝에 드디어 5학년 때 전주로 전학하였다(요즈음 ‘장관청문회’에서 문제가 되는 위장전입에 의해서였다). 졸랐다고 하였지만 부모님도 이미 그럴 요량이었다. 누나 둘이 전주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업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착한 누나들은 전주 생활을 시작하는 나에게 길거리를 익히게 할 겸 저녁에 시내를 구경시켜주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이 ‘미원탑’이었다. 휘황찬란하면서도 수시로 색상과 무늬가 바뀌는 ‘미원탑’에 넋을 잃었다. 나는 모든 도시마다 저런 탑이 있는 줄 알았다. ‘미원탑’은 유일무이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도시에 대한 집단추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주만의 문화가 있다. 무엇일까?
“풍수적으로 한반도의 배꼽은 모악산이다. 모악산 저쪽 즉 금산사 쪽이 자궁에 해당되고, 모악산 이쪽 즉 전주 쪽이 이를 지탱해주는 척추이다.” 필자의 해석이 아닌 시인 김지하 선생의 지론이다. 좀 더 풀어보자. 김제·정읍·고창·부안·군산은 산의 배[山腹]에 해당되어 평탄하고 드넓다. 농산물이 풍부하다. 옛날 큰 대장간들이 용머리고개 등 전주 서쪽에 많았던 것도 이곳 평야지방이 큰손이었기 때문이다. 그 반대쪽인 임·순·남과 무·진·장은 산의 등[山背]에 해당되어 산간지방이 된다. 전주는 산의 배와 산의 등의 한 중간에서 이 둘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음과 양(평야와 산간)이 서로 교합하는 음양교구(陰陽交?)의 땅이다. 호남과 제주도를 관장하던 전라관찰사가 전주에서 정무를 보았던 이유이다.
평야에서는 농산물이, 산간에서는 약초가 풍부하였다. 풍부한 농산물과 약초들은 전주로 집하되었다. 풍부한 먹거리는 음식문화를 발전시켰고, 그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소리·춤·서화·출판(완판본)이라는 전주만의 예술문화가 형성되었다. 대사습놀이가 전주를 대표하게 된 것도, 전주에 표구점이 많았던 것도, 한지 제조가 발달하였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그리하여 전주는 ‘예향의 도시’가 되었다. 동남부 산간(임·순·남, 무·진·장) 지방의 풍부한 약초를 바탕으로 전주는 대구와 더불어 쌍대 약령시장이 되었다. 이렇게 전주의 풍수지리적 특징은 전주 고유의 문화를 만들었다.

전주시가 ‘미래문화유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지금은 문화유산이 아니나 3·40년 후에 전주를 대표할 만한 문화유산이 될 유·무형의 것들을 발굴·보전·계승시키자는 것이 핵심 주제이다. 필자가 앞에서 언급했던 미원탑·홍지서림·호남제일문 등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 말고도 60-80년대 전주의 명물이 되었으면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명 공원·건축물·음식점·거리·시장도 미래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미래문화유산 프로젝트’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서울과 다른 나라 도시에서도 정착중이다. 그렇다고 이 프로젝트가 아류는 아니다. 물적 토대가 다르면 다른 문화가 생긴다.
다시 필자의 이야기이다. 직장은 전주 인근이나 머무는 곳은 순창이다. 15년 전에 민가 한 채를 구입하여 그곳에 살았다. 1970년에 지어진 집이다. 집을 지은 목수는 그 동네 사람이었다. 필자가 그 집을 구입할 당시 그는 80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를 통해 그 집을 짓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었다. 그때 동네 대부분의 집들이 ‘입식부엌’과 ‘보일러 난방’설치로 인해 원형을 잃었지만 이 집만은 그대로였다. 필자는 마을에 한 집이라도 원형대로 보존하자는 생각에 고치지 않았다. 누가 알랴, 50년 후에 순창군 유일의 ‘전통민가 문화재’가 될지!
‘미래문화유산 프로젝트’는 성공한다. 의미가 있고, 구체적이고, 소유주나 관리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발굴되어 지정되게끔 대상물들의 소유주와 관리자들이 자발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또 그것들이 미래문화유산이 되도록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음식점이면 많이 이용해주고, 공원과 건축물이라면 더 많이 찾아주면 된다. 남의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민가도 그러하다. ‘개량’하거나 허물고 새로 짓기에는 너무 소중한 미래문화유산이다. 전주에는 잠재적 미래문화유산들이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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