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패망 후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최후 거점인 주류성(周留城)으로 알려진 부안 우금산성(전라북도기념물 제20호) 유적에 대한 학술자문회의와 현장설명회가 16일 오후 2시 발굴현장에서 개최됐다.
  (재)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김규정)이 실시한 이번 조사는 성 동쪽구간에 대한 성곽시설을 확인하기 위한 발굴이다. 지난해 11월 시작해 오는 3월 마무리될 예정으로 현재 ▲ 우금산성 동문지와 등성시설(계단) ▲ 동문지와 인접한 성벽구조 등이 확인됐다.
  동문지는 변산 정상과 이어지는 경사면에 있으며, 출입구 형태는 개방문(개거식·성문의 상부가 개방된 형태)으로 판단된다. 북쪽 측벽석의 현재 상태로 파악했을 때 두 차례 이상 고쳐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1차 문지의 규모는 길이 3.5m, 너비 3.9m이며 수개축한 2차 문지는 길이 7.1m, 너비 3.3m로 1차 문지보다 너비가 줄었다. 1차 문지의 북쪽 측벽과 성 외벽의 모서리, 2차 문지의 양쪽 측벽과 성 내?외벽 모서리는 직각을 이루고 있다. 2차 문지 통로부 입구에서는 문확석(문을 고정시키는 돌) 1매가 확인되었는데, 윗면에는 지름 24㎝, 깊이 8㎝ 크기의 원형홈이 있다.
  특이한 점은 2차 문지 양쪽의 측벽에 너비 32~50㎝, 깊이 47~70㎝의 나무기둥(목주)홈이 여섯 군데 시설되어 있으며 바닥에는 주초석(건축물의 기둥을 받쳐주는 돌)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더 이른 시기에 발견된 문지에서는 보통 땅을 파서 기둥홈을 마련하는데 우금산성은 목주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목주홈 간의 거리는 1.8m로 일정하며 양쪽 측벽석에 3개씩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문지 바닥면은 생토를 이용하여 흙다짐하였다.
  등성시설(성안에서 성벽 위나 성문의 문루 등에 올라가게 만든 시설)은 동문지의 내부 북쪽에서 확인되었다. 확인된 길이는 4.2m, 너비 6.4m이며, 길게 깬 돌을 이용하여 계단 형태로 쌓았다.
  동성벽은 바닥면을 잘 고른 뒤 모래흙과 풍화토를 깐 후 길게 깬 돌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불규칙한 돌을 사용하여 가로?세로 줄눈이 일정하지 않게 쌓음)로 축조하였다. 유물로는 다량의 어골문(생선뼈무늬), 격자문(문살무늬)이 새겨진 기와와 ‘부령(扶寧)’명 기와, 청자와 분청사기 조각 등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부령(扶寧)은 부안 일대 옛 지명으로 백제 시대 개화현으로 불리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고쳐 부름. 1943년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개칭했다.
  이번 조사는 우금산성의 문지 축조 방법과 성벽의 구조, 등성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복원?정비 사업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원 관계자는 “우금산성 동문은 통일신라시대나 그 이전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조사 이루어진다면 우금산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잇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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