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안 반계 유적지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에 은거하며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지었던 유형원의 시문을 모은 문집<반계유고>(창비)가 출간됐다.
  유형원(1622~1673)은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실학자들이 자신들보다 앞서 적폐를 청산하고 왕조를 일신할 해법을 제시한 인물로 주목한 '실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인물.
  유형원은 서울에서 태어난 경화사족(한양 인근에 사는 선비)였으나 32세의 젊은 나이로 우반동에 이사와 <반계수록> 26권을 저술하는 등 20년 간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이번에 출간하는 <반계유고>는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차례로 발굴해 소개한 <반계잡고>와 <반계일고>를 기본으로 하고 그사이 새롭게 발굴된 자료를 총망라해 정리했다.
  일찍이 성호 이익은 반계 유형원을 알고자 한다면 <반계수록(磻溪隨錄)>에 더해 그의 문집을 꼭 읽어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반계를 실학의 1조(祖)로 공인받게 한 대표작 <반계수록> 외에 그가 남긴 문집의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었는데, 이번 <반계유고>의 출간에 힘입어 실학의 첫출발 당시 조선 지식인의 시대인식과 그들이 목격한 시대정황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공간(公刊)되기 시작한 실학서들에 한 세대나 앞서 영조의 명으로 공간된 <반계수록>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명·청 교체라는 혼란기를 조선의 지식인들은 어떻게 인식했는지, 후대의 실학자들은 반계 유형원이 펼친 사상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는지를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반계유고>는 전체를 3부로 편성해 반계 유형원이 남긴 시문들을 한데 묶었다. 제1부는 시 작품으로 반계 유형원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자아의 독백을 들을 수 있다. 수록된 시는 총 182편으로, 반계 유형원의 청년기부터 몰년 가까이에 이르기까지를 대략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대부분의 시편은 반계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생활의 실상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독자들은 반계가 남긴 시를 통해 조선 중기의 지식인이 내면에 품은 감정과 정신을 깊이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는 산문인데, 반계의 필생의 과업이었던 <반계수록>을 저술한 취지 및 반계 자신의 철학담론과 역사담론을 토로한 내용이다. 역사, 지리, 철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반계수록>을 비롯해 <이기총론(理氣總論)> <동국문(東國文)> <여지지(輿地志)> 등의 저술활동을 이어간 반계 사상의 궤적과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제3부는 반계와 <반계수록>에 관해 후인들이 기록하고 논평한 각종의 글들을 모은 것이다. 후학들이 반계를 기리며 쓴 전, 행장, 언행록, 묘비문, 제문, 연보 등이 담겨 있다. 유형원이 쓴 글은 아니기에 ‘부록’이라 이름 붙였지만 그의 인간됨과 학문을 이해하는 데 여러모로 참고가 될 뿐 아니라, <반계수록>이 후세에 어떻게 수용되는지도 두루 살필 수 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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