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유럽은 아직 가톨릭 교회의 지배하에 있었다. 로마 교황청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면서 세속화의 길을 걸었다. 특히 교황 레오10세는 사치스런 생활로 원성을 샀다. 교황은 결국 빚에 허덕였고 성베드로 대성당을 짓는 일까지 겹쳐 재정난이 심각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바로 면죄부를 파는 것이었다. 교회가 면죄부 판매에 팔을 걷어붙였다. 사제들은 “누구든 회개하고 기부금을 내면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돈이 상자 속에 짤랑하고 들어가는 순간 영혼은 지옥의 불길 속에서 튀어나오게 된다”고 설교했다.
  이 면죄부 판매는 잘 먹혀들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돈을 내고 쉽게 구원받는 길을 택했다. 교황청은 면죄부 판매로 엄청난 부자가 됐다. 하지만 당시 민중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한 상황이어서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발도 점점 거세져갔다.
  1517년 10월31일.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는 이른바 ‘95개 조문’을 만들어 교회에 게시했다.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고 한 것은 스스로 깊이 반성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아닌 교황이나 성직자가 죄를 용서할 수 없다. 면죄부를 사서 죄를 용서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죄를 용서받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뿐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종교 개혁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유럽은 도도한 종교 개혁의 파도에 휩싸였다. 루터가 앞장 선 개혁은 루터교를 탄생시켰고 이 새로운 교회가 유럽의 대부분으로 퍼져나갔다. 루터교는 신교 혹은 프로테스탄트라 불렸다. 프로테스탄트는 저항하다는 뜻이다. 스웨덴과 덴마크, 잉글랜드 등이 모두 신교로 돌아섰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도시들도 신교의 영향권에 들었다. 
  지난달 28일 ‘불교 개신교 천주교 종교 개혁선언 추진위’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대다수 대중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데도 종교는 따뜻이 안아주지도, 길을 밝히지도 못하고 있으며 성직자들과 수행자들의 타락은 이미 종교를 유지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어 “자비와 사랑의 종교, 자본이나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 자율종교, 평등하고 친밀하게 연대하는 공동체의 종교 등을 구현하기 위한 길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그간 우리나라 종교계는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해 시끄러웠다. 불교는 적폐로 인한 문제점들로 홍역을 앓았고 개신교계도 교회 세습이나 종교인 과세 반대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 이에 종교 개혁이 절실하다는 공론이 일었다. 지식인들이 나선 이번 공동선언문은 그런 견지서 주목할 만하다. 종교적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지금 이 개혁운동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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