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철_프라이

인류 최초의 걸작은 음식을 사냥하기 위한 간절한 염원과 사유를 담은 동굴벽화이다. 어두컴컴한 동굴 벽에 선명한 안료와 목탄으로 그림을 그렸다. 초원을 달리는 말과 황소, 그리고 매머드와 사슴, 그 안에 손바닥으로 자신의 존재를 새겼다.
  음식을 주제로 미술가 개인의 삶이나 시대를 반영한 기획전이 열린다.
  전북도립미술관(관장 김은영)은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20명 초대미술가들이 참여하는 ‘음식사냥’전을 15일부터 개최한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본능이자 숙명이다. 배가 고파서 먹고, 더러는 눈으로 즐기기도 한다. 좋은 사람과 나누는 음식은 행복하다. 하지만, 음식을 사냥하는 일은 살아 있는 것을 해하고 취하기 때문에 다분히 폭력적이다.
  ‘음식사냥’전은 음식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해서, 음식 자체에 대한 예술적인 상상력, 그리고 음식에 얽힌 사회성과 폭력성을 녹여내고 있다.
  참여 작가는 기유경, 김원, 김진욱, 박성민, 박은주, 박철호, 비콘, 성병희, 성연주, 신재은, 심혜정, 심홍재, 양광식, 이보름, 이호철, 조경희, 하루.k, 하영희, 한윤정, 황인선.
  전시는 ▲음식이란? ▲음식 상상 ▲얽히고설킨 사람살이 등 세 개 영역으로 나눴다.
  ‘음식이란’에서는 음식재료를 통해서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하영희는 어머니가 밥상 위에 매일같이 만들어 주시는 반찬을 하나둘씩 그리다가 김치를 그리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 김치 반찬들을 작품 소재로 삼아 작품을 발표했다. 2015년부터 2년간 경상북도의 한 농가에서 다리 하나가 절단된 송아지를 직접 촬영한 기록 영상물은 생명의 존엄성과 경제 논리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박은주는 농촌의 풍경과 농부의 일상을 고스란히 전시실 안으로 옮겨놓았다. 따뜻한 공깃밥 한 그릇이 밥상 위에 놓이기까지의 과정 속에는, 생명의 순환고리와 농부의 정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음식 상상’에서는 음식 자체를 낯설게 응시해서 창의적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하루.k는 높은 하늘과 험난한 산, 구름 이외에도 음식을 화면 가득히 그렸다. 기존의 산수화 조형방식에 음식이라는 현실적인 소재가 함께 어우러진 <맛있는 산수>는 우리가 모두 찾고 있는 유토피아가 어디인지에 대해 묻는다.
  박성민은 식재료를 부엌이라는 공간이 아닌 사진 스튜디오 안으로 불러들여서 더는 먹기 위한 대상이 아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했고 기유경은 생명의 근원인 곡식이나 과일, 채소 등의 씨앗을 소재로 삼고 있다. 추상이 아닌 구상적인 형태 안에서 서정적으로 그렸다.
  ‘얽히고설킨 사람살이’에서는 음식으로 얽힌 사회상과 살기 위해 음식사냥을 멈출 수 없는 인간의 폭력성도 되묻는다.
  이호철의 108개 달걀부침 설치조형물은 불교에서 말하는 108가지 인간적 번뇌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달걀부침에 부조리한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자괴, 소외, 절망, 분노 등의 의미를 담았다.
  한윤정은 자그마한 식당, 카페, 슈퍼마켓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일견 통일성 없이 어수선해 보이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매력적인 공간을 주목했고 박철호는 ‘돼지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스스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접하고 얻은 영감을 토대로 작업했다.
  김원은 현대인들의 일상에서 기인하는 다양한 사회적인 갈등 관계에 착안한 ‘커뮤니티’ 연작 작품 중 한 작품인 ‘알콜릭’을 전시했다.
  개막식은 15일 오후 4시. 심홍재가 ‘신줏단지:신주를 모시는 그릇’이라는 주제로 퍼포먼스를 펼친다. 오후 5시부터는 초대미술가 작품으로 구성한 미디어 파사드를 미술관 야외 정원에서 상영한다. 전시는 2018년 2월 4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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