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중기 문신이자 시인인 정철에 얽힌 설화다. 평양에 연옥이라는 미모가 뛰어난 기생이 있었다. 워낙 경국지색이라 부임한 평안감사들이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빠질 정도였다. 조정에서는 연옥을 아예 죽이거나 쫓아버릴 생각으로 정철을 평안감사로 보냈다. 그렇지만 정철 역시 연옥이 아깝다는 생각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글재주를 겨뤘다. 정철이 한 구절 읊으면 연옥이 맞받는 식인데 그 재주가 뛰어났다. 이에 정철은 연옥과 더불어 평안도를 잘 다스렸다는 것이다.
  기생하면 흔히 술자리에서 노래와 춤으로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는 직업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선 기생은 달랐다. 실제로는 종합 예술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노래와 춤, 악기, 학문, 시, 서화에 능한 게 기생이었다. 또 말씨나 행동거지도 교양이 깃들었고 높은 관리를 대하는 예의범절도 엄정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기생은 해어화 즉 선비들의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연옥이라는 기생도 글재주로 천하의 정철을 녹였으니 그 수준을 알만 하다.
  특히 평양 기생은 미모까지 출중해 이름이 높았다. 남남북녀라는 말도 있듯이 평양 기생들은 북쪽 여성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미인들이었다. 그래서 명기도 많이 나왔고 그만큼 기생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지금 보면 놀랄 정도인 그런 교양이 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생이 되려면 대개 소녀 때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혹독한 훈련을 거쳐 15세가 되면 현업을 하게 되는데 보통 20대를 넘기면 노기 취급을 받았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천민 대우를 면치 못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19세기 개성 한량 한재락이 쓴 평양기생 이야기 ‘녹파잡기’라는 책이 10년 만에 재출간 됐다. 조선시대 기생을 주제로 한 유일한 단행본인 이 책은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평양기생은 모두 66명인데 하나 같이 아름답고 매력이 넘치는 여성들이었다. 책에 나오는 기생들은 천성이 강직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면 상대를 않는 콧대 높은 이들이었다. 안 교수는 “19세기 기생은 시회를 만들었고, 문인도 기생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는 등 예술인이었다”고 평가했다.
  녹파잡기는 요즘으로 따지면 연예계 최고스타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기생과 기방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수 있다. 지식인들을 매혹시킨 당시 기생들의 문화는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문화자산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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