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상태에서 말라 죽은 나무, 고사목. 늙거나 병들거나 산불이 나거나… 저마다의 이유로 생명을 잃은 나무가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그것들의 생에 공감한 한 조각가의 깊고 애정 어린 손길로.

전북대 미술대학 엄혁용 교수가 지난 16일부터 29일까지 우진문화공간에서 스물일곱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10년부터 목재로 책을 구현해 온 만큼 나무를 다루는 솜씨는 물론 나무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나무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기 이르렀는데 53살에야 교수로 임용된 작가에게 친구들이 농담 삼아 건넨 “고목에 꽃이 피었다”는 말을 통해 ‘늦게 핀 꽃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

때문에 플라타너스 등 고사목을 재료 삼고 그것의 최후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고서 느낌을 내기 위해 고목을 즐겨 썼지만 고사목을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며, 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시도도 처음이다.

작가는 “이미 폐기처분될 걸 작품으로 재생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과정미술의 일환으로 전시가 끝나면 적당한 공간을 찾아 나무가 무너지고 썩는 등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기록할 거다. 고사목이 책으로, 책이 다시 자연으로 가 닿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70cm에 이르는 고사목이 눈길을 끈다. 고사목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칼질하고 오방색을 입힌 책 연작물은 전보다 섬세하고, 나무인 듯 책인 듯 경계를 허물어 주제의식을 강화한다. 고사목은 재가 되고 흙이 돼 제자들에게 가 닿을 작가 자신이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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