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농악의 대부 김형순 선생(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 설장고 기능보유자)이 12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4세.
  호남우도농악에 속하는 이리농악은 1985년 1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됐다.
  이리농악은 김형순이 1952년에 부안에서부터 이주해온 뒤 풍물계를 조직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김제·정읍·부안의 전문적 우도굿잽이들을 받아들이면서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양성해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설장구 대가인 그는 14살 때 처음 장구채를 잡았다. 부안의 이동원 선생의 장구소리에 반해 무작정 배움을 청했으며, 70여 년 동안 농악인생의 길을 걸었다.
  부안이 고향인 그는 1953년 20살 때 ‘익산’(이리)으로 터전을 옮겼다. 당시 어울린 풍물패는 김제의 김문달 선생, 부량면 박판열 선생(전북 무형문화재7-3호), 그리고 백구의 이준용 선생(전북 무형문화재7-9호) 등이다.
  이로 인해 익산 새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고, 김제·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할 수 있었다. 이리농악은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으며,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자주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덩덕궁이(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유족으로는 유족으로는 부인과 3남 6녀가 있다. 김익길 전라일보 기자가 막내 아들이다. 익산병원장례식장 4층(특실), 발인은 14일 오전. 장지는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 354-19. 연락처는 063-842-4440.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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