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민 전주비전대 교수

필자는 올해 봄부터 전주교통방송의 한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에 매주 특정 요일에 자동차 유래와 역사에 관한 패널로서 출연하고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첫 방송 이후로 원고에 대한 압박과 방송이 주는 긴장감 속에서도 벌써 26주라 시간이 훅 지나갔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만나고 있는데 잠깐 스쳐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슴에 새겨지는 소중한 인연도 있을 것이다. 방송에 인연이 전혀 없던 필자가 방송을 출연하게 된 사연 속에서 작은 배려가 만들어 낸 인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작년 여름쯤인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같은 동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지는 분이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다부진 체구,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딱 봐도 선한 인상으로 호감을 갖게 하는 이미지를 가진 남자분이였다. 엘리베이터 공간은 모두에게 그렇듯 둘만 있게 되면 어색한 분위기 속에 늘 오르내리는 층인데도 시간이 더디 간다는 생각을 들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이런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또 1평 남직한 공간에서 둘이 남겨지게 되었다. 늘 그렇듯 가벼운 눈인사와 상투적인 안부만 나누던 나에게 대뜸 ‘혹시 뭐하시는 분이세요?’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사실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기면 서로의 신상을 묻는 건 당연한 일이진대 바로 뭐하는 분이냐고 묻는 건 때에 따라서는 상대방에게 결례가 될 수 있는 그런 질문일 수 있다. 그렇지만 워낙 좋은 인상을 가진 그분에 대해 평소에 왠지 모를 좋은 감정이 있었던 터라 짧은 정적 끝에 그냥 ‘애들 가르쳐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물코가 뜨인 둑처럼 계속해서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필자가 전주비전대학교에서 자동차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것을 기어이 알아내고 말았다. 물론, 상대방도 스피치를 가르치는 회사의 대표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인지 깊은 울림을 가진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가 전주교통방송에서 오랫동안 진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참 능력도 많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치는 인연도 전생의 억겁의 만남이 있었다고 했던가?
그렇게 시작한 서로간의 인사가 만날 때마다 유쾌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소위 잘 아는 이웃이 되어가면서 시골에서 따온 과일도 나누고 작은 온정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한번은 그가 최근에 잊지 못할 따뜻한 배려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아파트 단지 내를 걸어 들어오는 자신에게, 한 남자 꼬마아이가 ‘아저씨 괜찮다면 제 우산 함께 받으실래요?’라며 우산을 자기 쪽으로 내밀었다고 한다. 언뜻 봐도 같은 동에서 종종 마주치던 아이인 거 같은데 책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에 진지한 표정으로 우산을 함께 쓰자는 제안에 왈칵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필자도 참 요새 아이 같지 않고 누군지는 몰라도 그 부모는 자식교육을 잘 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올해 봄을 맞이하는 시기에 그는 필자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이 봄 개편을 맞아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자동차의 신기술이 아닌 다양한 용어나 부품들이 개발하게 된 유래나 역사를 소개하는 컨셉이며, 필자가 패널로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눈 대화 속에서 라디오 방송에 적합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을 직업 본능상 알았다고 했다. 얼떨떨한 제안이었지만 한번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끌리듯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라디오 방송은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지만 생방송이며 매주 새로운 주제를 찾아 방송원고를 만드는  스트레스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한번은 방송이 있는 날 라디오 방송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조르는 둘째녀석을 데려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우리 아이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부탁을 했는데 담당피디님이 흔쾌히 허락해준 것이다. 늘 그렇듯 방송 시간 10여분 전에 아이와 함께 방송국에 갔는데 안쪽 진행을 하던 그가 놀랜 토끼 눈을 하며 과도한 손짓을 하더니 잠시 광고가 나가는 시간에 방송실 밖으로 뛰쳐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가 다짜고짜 우리 둘째를 안아주면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다.
“여러분들! 그때 우산을 씌워준 아이가 바로 이 아이예요!” 이 아이가 교수님 아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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