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각본이란 조선시대 민간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한 책을 말한다. 당시 출판은 주로 조정이나 관아에서 맡았는데 조선조 중기 이후 민간인들이 책 간행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방각이라는 말은 목판에 새긴다는 뜻이다. 방각본의 유래는 중국 남송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에서도 영리를 위해 서점에서 책을 냈다. 이 용어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방각본이 활발하게 출판된 시기는 19세기였다. 이 때 조선에서는 세 가지 방각본이 나왔는데 서울에서 경판본, 전주에서 완판본 그리고 안성지방에서 찍었던 안성판본이 있었다. 이들 지역은 모두 서적 보급이 활발하거나 종이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 혹은 상업 지역이었다.
완판본은 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주에서 나온 말로 백성들의 수요에 부응한 선진적인 출판물이었다. 18세기부터 전주에서는 서민출신 상공인들이 중심이 돼 여러 종류의 책들을 만들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완판본은 국문소설 46종을 비롯해 한문소설 1종, 비소설 52종 등 총 99종에 달한다. 특히 완판본은 경판본과는 달리 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서체를 썼다. 또박또박 해서체여서 누구나 읽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서민적이고 민중적인 글자체였던 것이다.
완판본은 또 소설 유충렬전을 유일하게 발행했고 춘향전도 다른 판본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영웅 유충렬의 일대기를 그린 유충렬전은 온갖 고난을 딛고 나라를 구하고 부귀영화를 쟁취하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았다. 완판본 춘향전 역시 춘향과 이몽룡이 벌이는 정사 장면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이채를 띠었다.
이 완판본의 서체가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게 됐다. 한글과 컴퓨터사는 최근 전주시가 개발한 완판본 서체를 한컴 오피스에 탑재한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공들여 개발한 서체를 사장되지 않도록 하고 새로운 서체를 알려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다. 완판본체는 완판본 출판물에서 집자해 만든 서체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족보가 있는 글자체다. 지난 2014년 사회적 기업 마당이 처음 개발했고 이를 전주시가 다시 손을 봐 조형적 아름다움과 대중성을 갖춘 서체로 재탄생시켰다.
지난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경축식에서 전주시는 완판본체 복원 등 한글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작지만 의미가 깊은 일이었다. 전주는 조선시대 가장 선진적인 출판도시였다. 완판본은 물량적인 면에서 압도적이었고 서체 역시 아름답고 읽기 쉬워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문화자산이 이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분야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 입력 2017.10.11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