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에 비해 가야 연구에 미진했던 전북. 도내 동부지역에서 관련 유적들이 확인되고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이 국정 100대 과제에 포함되는 등 최근 들어 전북 가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각도의 심도 있는 조사 및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백제와 소가야 같은 주변 정치체와의 연관성을 살필 때 선명해진다고 했다.

(사)호남사회연구회(회장 이종민)가 지난 22일 전북대 인문사회관에서 마련한 30주년 기념 학술대회 ‘가야문화의 보고(寶庫), 전라북도를 조명하다’에서는 분묘, 철기문화, 봉수를 통해 전북 동부지역 속 가야를 드러냈다.

전상학(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현재까지 17개소 유적 140기 석곽묘가 확인됐다. 1982년 남원 월산리 고분군 발굴을 시작으로 분묘부터 제철유적, 봉수까지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밝혔다.

유영춘(군산대학교박물관)은 “주변국가의 영향도 받았지만 철기 생산기술을 자체 개발해 가야계 소국과 왜까지 영향을 줬다. 그러나 130여개소 제철유적에 대해 한정적으로 조사했다”고 말했다.

조명일(군산대)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봉수 400여개 소 중 이곳에 72개소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정식으로 발굴 조사한 곳은 장수 영취산, 봉화산, 원수봉 봉수 3개소”라고 설명했다.

가야를 규명할 유적들에 대한 조사가 미흡한 만큼 철저하고 다양한 조사, 연구를 먼저 진행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주변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성덕(전주대)은 “보존과 활용을 논하기 앞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발표자들이 지적하듯 조사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다. 학술조사가 완결된 후 활용방안을 마련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병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전상학(전주문화유산연구원) “지금까지는 대가야 영역으로만 인식돼 주변 지역에 자리한 세력과의 관계를 간과한 측면이 적지 않다. 종래 연구결과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 내지 한쪽에 편중된 사고를 버리고, 고고자료와 문헌사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연구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김낙중(전북대)도 “가야에만 집중해서는 그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고분문화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대가야 일원임을 부정할 수 없으나 백제, 소가야 같은 다른 정치체와 관련성도 중요하게 논의돼야 한다. 중국자기나 남조경은 이 지역 성장에 주변국들의 역할이 컸음을 추측하게 한다”면서 뜻을 같이 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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