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두 사람이 갈등이 생겨 랍비를 찾아갔다. 이들은 다투어 자신이 옳다고 호소했다. 랍비는 그들에게 한 사람씩 와서 말하라고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와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자 랍비는 “당신 말이 옳소.”라고 대답해주었다. 또 한 사람 역시 같은 답변을 들었다. 이를 본 아내가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옳다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일이 해결됩니까?” 이에 랍비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 말이 옳소.”
  어느 한편에 편들지 않고 공평무사한 랍비의 지혜가 드러나 있다.
  가정 불화로 골치가 아픈 한 사람이 랍비를 찾아와 도저히 가족들과 살 수가 없다고 조언을 구했다. 랍비는 그에게 한 번은 양을 방으로 들여 같이 살고 또 한 번은 닭과 한 방에 살아보고 7일 후에 오라고 했다. 그 사람은 며칠 후 와서 머리를 감싸 쥐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호소했다. 랍비는 그에게 이번에는 양과 닭을 내보내고 살아보라고 권했다. 나중에 랍비에게 온 그 사람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양과 닭이 없는 가족들과의 생활이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랍비는 유대교의 율법 교사이자 사제이며 영적 지도자이다. 랍비는 원래 ‘나의 선생님’ 혹은 ‘나의 주인님’이라는 뜻을 가진 헤브라이어다. 랍비는 지혜의 상징이다. 유대인들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랍비를 찾아가 지혜를 구하거나 조언을 듣는다. 랍비는 상담 이외에도 종교 행사 등 의식을 주재하고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며 재판관 역할도 한다. 정리하면 랍비는 유대인 공동체의 스승이자 중재자이며 사제이고 봉사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국내의 초정통 랍비들 때문에 본국 유대인과 해외 유대인 간의 갈등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초정통 랍비들은 극단주의적인 수구파로 과거 전통을 고집하는 쪽이다. 이들은 최근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 서벽에 남녀 공동 기도소를 만들려는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초정통 랍비들은 또 유대인 자격 심사를 강화해 최고랍비회의가 이 일을 맡도록 했다. 이런 조치들에 대해 온건파인 해외 유대인들은 조국에 보내는 자발적 지지와 기부금 등을 줄여 유대인 사회의 단결력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초정통 랍비들은 권력층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민주주의이면서도 초정통 랍비들의 법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과격한 원리주의에 가까운 초정통 랍비들이 사실상 국민들의 주요 생활을 지배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랍비가 아무리 지혜롭다고 하나 시대적 조류를 거스를 수는 없다. 최근 사태를 보면 초정통 랍비들의 구시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행태가 결코 지혜롭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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