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을 맞아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이들과 달리 집에서 혹은 일터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휴가보다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세계를 선사한다.

허수정 작가의 장편소설 <비사문천 살인사건>. 신아출판사가 장르소설의 지평을 넓히고자 진행 중인 신아 미스터리 컬렉션 공모의 일환으로 지난 6월 한유지 장편소설 <살인자와의 대화>에 이어 두 번째 미스터리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형 시대추리소설이다. <왕의 밀사> <백안소녀 살인사건> <요시와라 유녀와 비밀의 히데요시> 같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이면을 추리 장르와 결합한다. 당시 역사현장을 배경으로 범인을 찾는 방식이다.

2015년 첫 선을 보인 작품을 정리해서 출간했는데 조선조 명종 문정왕후의 위세가 극에 달했던 1565년 음력 4월을 배경으로 이지함이 연쇄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당시 도성에서 봉은사 승려와 기생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치 다잉메시지(죽어가면서 혹은 죽기 전 남긴 글귀)처럼 ‘비사문천이 이르되 임꺽정이 환생했으니 목자가 인신공양하리라’는 문구를 남긴다.

여기에 의문을 품은 이지함과 포청의 포교 장명석이 사건의 진상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이것이 거대한 음모의 서곡임을 알게 되는 줄거리다. 남다른 상상력은 현실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그 해 문정왕후가 타계하는 바람에 승려 부우가 실각한다. 반상의 질서가 뚜렷하고 억불숭유를 지향했던 시대 임꺽정이 출현한 건 격동의 시대임을 증명한다. 격동의 시대에는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가 충돌하기 마련이다.

주인공 이지함(1517~1578)도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실존인물이다. 명문 사대부가 출신이었음에도 만 56세인 선조 임금 때에야 벼슬길로 나선 건 민중적이고 진취적인 이른바 ‘기인’이어서다.

포천현감으로 간신히 재직했을 때도 천시됐던 상공업 육성을 주장했고 말년 아산현감일 때는 걸인청을 설립해 백성을 도우려 했다. 양반임에도 백성들을 향했던, 신분을 넘어 실리와 구휼을 향했던 성정이 오롯하다.

시대 분위기와 주인공의 정체성은 ‘혼란한 시기, 조선탐정의 사건 해결’이라는 서사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관찰자가 돼 시대와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핀 다음 사실을 근거 삼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역사적인 사실을 자세하고 빈틈없이 묘사하고 상상과 추리의 결정체인 반전을 안정적인 필력을 구현하는 등 짜릿함을 넘어 아찔함을 선사한다. 450여 년 전 실제로 이 사건이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저자의 당찬 상상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가는 “상상과 사색은 성찰이 토대가 돼야 하고 그것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추리란 한낱 그림 속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추리하기 위해서는 관찰자가 돼야 한다. 관찰자는 시대를 입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즐기길 바란다”고 밝혔다.

부산 출생으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한국사뿐 아니라 일본사를 비롯해 동북아시아 역사에 천착하고 있는 팩션 작가다. 주요 작품으로는 <바늘귀에 갇힌 낙타> <소설 김대중> <해월> <8월의 크리스마스> <일지매> <부용화> <노량> <이방원 정도전 최후의 전쟁> 등이 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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