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한국언론사협회 문화예술위원장)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지 두 달이 지났다. 이해를 달리하는 정치 당사자들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게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국정의 방식에 있어서는 참신함이 엿보인다. 이제는 언설이 아닌 행동으로 정치의 패러다임도 한 단계 격상되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특히 국정농단의 중심이 됐던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정말 새로운 혁신 방안이 강구되기를 기대한다. 모두가 한결같이 국가 문화예술체계가 블랙리스트로 얼룩진 과거로부터 환골탈태하여 진정 으로 선진화된 풍토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것은 문화예술의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지금 모두가 갖는 그 간절함은 이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통상적으로 가져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안타깝게도 지난 일 년 국정농단의 회오리 속에 문화예술계는 전에 없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 새 시대를 맞아 그 아픔이 명실상부하게 문화예술의 선진화를 위한 성장통이었기를 바란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라는 말처럼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이 정말 한 단계 격상되는 변곡점이 되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임명되는 시점부터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강조했었다.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필칭 문화예술의 진흥, 융성, 창의를 내세웠지만 진정으로 그러한 목표가 제대로 구현된 적이 있었을까 싶다.
결국 거창한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면에서는 문화예술을 관료주의적 잣대로 감독하고 평가하고 재단하는 엄연한 현실을 현장의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체험해 왔던 터이다. 이러한 계제에 국가 문화예술정책의 근간을 팔길이 원칙에 두겠다고 공약한 것은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선진 유럽 국가들은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예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예술은 정치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 국가들은 대전 후 문화예술을 포함하여 정부정책에서 권력의 부당한 간섭과 통제와 검열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팔길이 원칙을 제도화 시켜 국가 공공행정의 전가보도로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서 이처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팔길이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한 것은 분명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진정성 있는 선언이다. 곧 선진화된 문화예술 정책의 기본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찍이 권력자들에게 문화예술은 그들의 이념과 철학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됐다. 이러한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가능한 최대한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민간영역의 효과성 ? 합리성 ?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진국과 같이 팔길이 원칙이 정착되려면 수평적인 패러다임의 민관협치 곧 예술거버넌스의 중심가치가 되는 ‘계도된 자율성’, ‘상대적 효율성‘, ’공생의 창의성‘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문화와 예술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며 발전해 나가는 다이내믹한 속성을 갖고 있다. 한때 어떤 외부적 조건과 영향에 따라 정체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한시적일 뿐 시대의 큰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정부는 시대의 문화 흐름에 순응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면서 팔길이 원칙을 통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바로 문화예술의 미래 백년대계를 여는 대국민 공감전략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미술의 혁명가로 불렸던 앙리 마티스는 ‘창의성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라고 했다.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팔길이 원칙을 존중하는 용기가 발휘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화예술 정책의 기본 정신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