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에게 배우자 - 완주 한울농원

전북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 한 깊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맨 꼭대기에 산란계 사육장이 있다. 이곳 닭을 족제비 등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진돗개 등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닭 역시 보통 건강한 게 아니다. 한울농원의 닭은 케지이가 없는 방사우리에서 자리기 때문에 날아다닐 정도로 움직임이 좋고, 수탉은 영역싸움을 하느라 털이 뽑히고, 암탉은 유정란을 만드느라 등쪽 털이 드문드문 빠져 있다. 특히, 몇몇 개량형 토종닭은 날아서 달아날 정도로 활기차고, 깃털 윤기가 건강함을 증명하고 있다.

◆무작정 귀농
'한울농원'의 유동일(47)·임지연(40)씨 부부는 지난 2008년 이곳 비봉면으로 무작정 귀농했다.
유동일씨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닌 '서울사람'이다.
그런데 이곳이 고향인 아버지가 20년 전 귀농했고, 종중땅을 일부 임대해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나무농사가 힘들다는 소리에, 3남매 중 막내인 유동일씨가 일손을 돕기 위해 아버지 고향으로 급거 귀향했다.
말 그대로 '무작정 귀농'을 시작한 것이다.
앞서 서울에서 전기일을 하던 유동일씨는 시골에서 동물농장을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때문에 천천히 귀농 준비를 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귀농을 선택하게 됐고, 농사 지식이 전혀 없었던 유동일씨는 2년간 산에서 농약만 주고 풀만 뽑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유동일씨는 "허술한 계획만 가지고 10년 빨리 고향에 내려오는 바람에 적응하기 힘들었다"면서 "주변에서 '사업이 망해 내려왔다'는 소리까지 들려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시행착오
종중땅 5만㎡(1만5,000여평)를 임대해 감나무 1,000주 및 산란계 500수 농사를 짓고 있는 유동일씨는 준비없는 귀농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부인인 임지연씨는 지난해까지 직장을 다니느라 농사일을 돕지도 못했다.
유동일씨는 아무도 없는 산꼭대기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농장을 관리했고, 농업지식이 없었던 이유로 농장 안정화는 더디기만 했다.
다행이 마을 감 작목반 총무를 맡게 되면서 농업교육 및 회원간 교류로 관련 지식을 습득했다.
또한 2010년 경부터 산 정상에 집을 짓고, 유정란 생산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유정란 부화를 원한 덕분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유동일씨 자신의 꿈 역시 동물농장이었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게 너무 많았고, 부인은 직장에 다니던 탓에 적응 과정은 너무나 길었다.
유동일씨는 "부인은 직장을 오랫동안 다니느라 농사일에서 손발이 맞지 않았고, 외딴 곳에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도 너무 힘들었다"며 "혼자 모든걸 시도하려는 무모함 때문에 시간을 조금 허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음은 강소농
2012년경 완주군청에서 '꾸러미 건강밥상' 사업을 시작할 당시 완주군에 유정란 작목반이 결성됐고, 로컬푸드 등을 통해 유정란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또한 개량된 토종닭 몇마리를 분양받아 기르기 시작했는데, 지인들에게 유정란 및 토종닭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기나 긴 귀농 기간에 비해 농촌 정착은 수월하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임지연씨가 직장을 그만 두고 농업일에 동참했으며, 완주군 농업기술센터의 '강소농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기본반, 심화반, 후속반 과정을 마친 임지연씨는 농업이 무엇인지, 귀농이 무엇인지, 강소농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농사일을 거들 수 있게 된 임지연씨는 즉시 남편 유동일씨 역시 강소농 교육을 받게 했고, 현재 유동일씨는 심화반 교육을 받고 있다.
임지연씨는 "비용절감, 품질향상, 고객관리, 가치증진, 역량강화 등을 배우고, 가족농 중심의 중소농이 되는 과정을 배웠는데, 이보다는 정작 농가 마인드 변화가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도심에서 귀농한 사람들에게는 기술보다는 마음 자세를 변화시키는게 중요함을 알게 된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유동일씨 역시 "이제서야 강소농이 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기존의 단순 견학과는 틀리게 교육을 통해 꿈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됐고, 맞춤형 컨설팅을 받으며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부부는 "교육으로 마음만은 이미 '강소농'이 됐다"면서 "실제 결과 역시 강소농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로컬푸드를 통해 판매한 유정란과 곶감, SNS 등 온라인 판매까지 1억원 넘는 매출을 올렸다.
유동일씨는 "그동안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마음에 먼 길을 돌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깊은 산속 행복한 '한울농원'
한울농장 산란계는 높은 산 속 케이지 없는 환경에서 주변 파프리카 및 쌀겨와 잡초 등 농산물찌꺼기와 배합한 사료를 먹고 자란다.
복지농장이 실현된 셈인데, 계란 노른자는 탄력이 강하고, 희막 역시 탁력이 크다.
산란계의 건강 상태도 좋고, 개량형 토종닭 상태는 너무 좋아 도망가지 못하게 육방을 망으로 막아 놨다.
밖에서 들여오는 일반사료 역시 유동일씨의 철저한 관리로 AI 발병 확률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유동일씨는 자가사료를 개발하고 있다.
Non GMO 사료만을 사용해 주변 농산물과 섞어 유정란을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수입 GMO 상품인 옥수수와 콩을 빼고, 깻묵을 기본으로 파프리카, 쌀겨, 배추, 잡초 등을 섞어 친환경 자가사료를 만들겠다는 게 목표다.
현재 산란계에 3개월만 해당 사료를 공급하면 친환경 제품이 되지만, 기르던 산란계 500수 전체를 병아리로 바꿀 계획도 세웠다.
건강한 닭들이 좋은 사료를 먹고 생산한 유정란은 지금보다 더욱 품질이 좋을 것이란 확신도 생겼다.
토종닭과 일부 닭을 울타리 높게 만든 산에 방사해 키울 계획도 세웠다.
이를 위해 사료배합기를 준비했으며, 부화기와 육추기(병아리 인큐베이터), 계란 자동세척기, 마킹기 등도 마련했다.
또한 산 정상에 남겨진 몇몇 농가를 고쳐 농촌체험현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임지연씨는 "그동안은 남편 혼자 1인농장을 운영하다 보니 홍보할 시간도 전혀 없었다"면서 "농기센터의 '찍자 생존'처럼 SNS 등에 홍보활동을 꾸준히 하고, 사업계획들도 구체화 하자 시야가 넓어지고, 사업계획 준비 역량도 생기고, 실천이 이어지며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농정사업 신청 대상자가 돼 사업계획서를 처음 만들어 본 것도 신기한데,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뿌듯함을 느꼈다"며 "정말 '강소농'에 한 발 더 다가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인과 어울려라
유동일 임지연씨 부부는 후배 귀농인들에게 현지인과 빨리 어울리라고 조언했다.
젊을 때 도전하는 열정도 좋지만, 귀농 교육을 받고도 막상 귀농하게 되면 막연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고 말한다.
또한, 현지인과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 사례가 너무 많은데, 적응하고 융화하는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임지연씨는 "마을 일을 서로 돕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특히, 농업기술센터를 적극 이용할 것을 강조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마을사람들과 서로 소개받기도 하고, 소통하고, 어울리라는 것이다.
유동일씨는 "젊은 귀농인들이 귀농자 단체만 쫒아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추후 어려움이 닥쳤을 때 정작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을에 있다"면서 "기술센터 교육을 빌미 삼아 마을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 지원 역시 마을에 집중되는 만큼, 함께 사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조언을 구하는 후배에게는 경험을 전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황성조기자, 전라북도농업기술원 취재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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