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의 주기적 운행을 시간 단위로 구분해 정하는 역법에는 모두 세 가지가 있다. 태양력과 태음력 그리고 태음태양력이다. 태양력은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만든 것으로 이집트에서 기원전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년을 365일로 정했다. 태음력은 달의 차고 이지러지는 모습을 변화 주기로 정한 것인데 흔히 음력이라고 부른다. 음력은 한 달이 29일이어서 1년이 354일이다. 그리고 태음태양력은 달의 모양을 기준으로 하되 계절에 맞게 조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태양력을 쓰지만 여전히 태음태양력의 영향력도 상당하다. 절기를 따지거나 제사 등에서는 음력이 적용된다. 그러자니 양력과 음력 사이에 1년에 11일 차이가 난다. 이를 보정하기 위한 것이 바로 윤달이다.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두어 양력과 음력 사이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윤달은 그래서 공달, 덤달, 여벌달, 남은달이라고도 부른다.

오랫동안 음력을 쓰다 보니 전래되는 풍습도 많다. 흔히 윤달은 무탈한 달로 돼 있다. 속담에 ‘송장을 거꾸로 세워놓아도 아무 탈이 없다’는 말이 있다. 탈이 없기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이사라든가 집짓기, 집 고치기 등이 윤달에 이뤄진다. 또 장의에 관련된 이장, 관 준비, 수의 만들기도 윤달에 한다.

그런가하면 윤달에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도 풍습이다. ‘동국세시기’에는 “광주 봉은사에서는 매양 윤달을 만나면 서울 장안 여인들이 다투어 와서 불공을 드리며 돈을 탑 위에 놓는다. 그리하여 윤달이 다 가도록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극락세계로 간다고 하여 사방의 노파들이 분주히 달려와 다투어 모인다”는 대목이 있다.

올해 윤달이 이달 24일부터 내달 22일까지 29일 동안 끼어 있다. 이에 따라 장의 업계와 예식 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장의 업계는 조상 묘를 돌보고 수의를 만드는 사람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장과 개장 보수, 화장까지 평소의 2배로 일이 늘어났다고 한다. 반면 윤달에는 결혼을 피하는 풍습에 따라 대부분 결혼식장은 한산하다는 전언이다. 다만 과거처럼 결혼 기피 현상이 확연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윤달에 무엇을 하라든지 하지 말라든지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미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음력이 한 물 간지 오래인데 거기서 윤달 운운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요소를 안고 산다. 우리의 삶은 편안하기 보다는 불확실하고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게 현실이다. 올 윤달에 벌어지는 일들은 그런 인간 심리 상태를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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