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학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대자보는 언론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서 대학생들의 정치적 사회적 의견을 표출하는 통로였다. 당시 기성 언론들은 정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대자보는 이런 틈새를 공략하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대학생들은 정세를 널리 알리고 또 권력의 부패와 횡포를 대자보를 통해 고발했다.
  원래 대자보는 중국이 시초다. 1950년대 문화혁명 당시 확산된 벽신문 유형의 매체였다. 소련이 1930년대 정치 선전의 목적으로 활용하던 벽보의 영향을 받았다. 1956년 모택동은 백가쟁명 백화제방 즉 언론 자유를 강조했다. 그래서 북경 천안문 광장에는 벽이 세워졌고 그 벽에 대중들의 견해를 담은 벽보가 나붙었다. 글자가 크다고 해서 대자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대자보는 권력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홍위병들이 문화혁명 기치를 들고 실권파에 도전해 그들을 무너뜨린 것도 대자보요, 다시 실권파가 역공에 나서서 문화혁명 4인방을 축출한 것도 대자보의 힘이었다.
  중국의 대자보는 1980년대 초중반까지 대륙 전체에서 성행하다가 1990년대 들면서 서서히 전면에서 사라져갔다.
  우리나라 대학가의 대자보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인터넷의 위력이 세지면서 대자보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2013년 12월10일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고려대에 나붙어 다시 주목을 끌었다. 당시 사회적 이슈이던 철도 민영화와 밀양 송전탑 사태를 비판한 이 대자보는 전국 대학가에 다시 대자보 열풍을 일으켰고 그 뒤로도 가끔씩 뉴스거리가 되고는 했다.
  요즘 대학가에 성추문 폭로 대자보가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지난 12일 고려대에는 모 학과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의 강제 추행을 고발하는 대자보 2장을 내걸었다. 그러자 다음날 다른 학과 여학생들이 같은 과 학생의 성추문을 폭로하는가 하면 며칠 후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의 항변이 대자보로 붙었다. 지난해에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여학생이 성희롱을 당했다는 폭로 대자보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 등장했다.
  첨단 소셜 미디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득세하는 마당에 원시적 매체인 대자보가 생명력을 갖는다는 게 이채롭다. 전문가들은 내용보다 성추문 대자보가 나붙었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가 되는 때이며 사건 폭로는 대자보가 훨씬 더 파괴력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그런 만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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