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아는 사람들과 있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네요.”

고 김흥수 화백의 장남으로 유족대표를 맡고 있는 김용환 씨가 지난 8일 전주와 전주 사람들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관련기사 본보 6월 8일자 12면>

이 날 유족(대표 김용환)과 전북대학교 박물관(관장 김성규)은 한국의 피카소로 잘 알려져 있는 김 화백(1919~2014)의 대표작 ‘미의 심판(1997)’을 비롯해 유화, 드로잉, 작업 도구, 포스터 등 유품 다수를 전북대박물관에 기탁하는데 합의하고 보관, 전시 관련 내용들을 나눴다. 연고도 없는 전주에 귀한 유품을 맡기기까지 과정과 부모이자 화가로서의 김 화백, 앞으로의 계획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2013년 김흥수미술관이 매각됨에 따라 소장품을 한 재단에 맡겼는데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에 방치해 뒀더군요. 이를 안 아버지가 2014년 소송을 제기하셨지만 석 달 뒤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소송을 이어갔고 2016년에야 마무리됐습니다. 지옥이라 할 만큼 힘든 시기였습니다.”

유족들은 승소해서 돌려받은 작품 중 70여점을 지난 5월 재단법인 한올에 기증한 후 유품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숙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이나 민간이 아닌, 어느 나라도 아닌 한국의 전문기관에서 관리하는 게 옳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한국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군데 다녔지만 결정하지 못하다가, 가족처럼 지내는 지인 분 추천으로 전북대에 오게 됐습니다. 진정성과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고 수장고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탁을 기념하는 전시는 전북대 개교 70주년과 김 화백이 1977년 선포한 ‘하모니즘(Harmonism)’ 40주년을 맞아 전북대 개교기념일이 있는 9월경 치러질 예정이다. 유품 일부 혹은 전체를 선보일지, 재단법인 한올의 소장품도 함께 소개할지 여부는 추후 결정한다.

녹록치 않은 과정들을 꿋꿋이 해 나가는 김 유족대표의 원동력은 뭘까. 뛰어나고 유명한 미술인이기 앞서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김 화백의 모습도 궁금했다.

“아버지가 저 초등학생 때 프랑스 파리로 떠나셨다 고등학교 때야 돌아오셔서 섭섭하고 반항하고픈 마음도 들었지만, 꿈인지 생시인지 되물을 만큼 좋은 기억도 선명합니다. 작가로서는 그림에 몰두하면 매사 젖히는 열정과 집중력, 예술성을 가지셨고 제자들을 양성하는데도 온 힘을 쏟으셨죠.”

이어 “나 또한 미술에 소질이 있었고 아버지도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원하셨지만 건축미술을 전공했다. 그럼에도 벤쿠버 미술관에 의견을 제시하는 자문단을 맡았었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인물화를 그려보고 싶을 만큼 관심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 유족대표가 언급한 모든 일 그 끝을 물었다. “당신(김 화백)이 하고 계셨던 생각대로 미술관을 세우고 싶습니다. 아버지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그분이 처음 시작한 ‘하모니즘’을 주제로 세계 미술계가 주목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른 주제나 형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북대박물관이 수탁품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전북대 쪽에서는 세계적 인지도가 있음에도 여러 사건들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아버지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하셨고, 나로서는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답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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