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선기현
 낮에 따놓은 장독대 옆에 핀 봉선화는 해질녘이면 툇마루 턱에 놓여 있는 이빠진 할아버지 막걸리 잔속에서 백반가루와 같이 비벼진다. 아주까리 잎으로 열손가락 명주실로 동여 메고, 여섯 살배기 순희 왼 손목, 오색실 감는다. 동트는 내일이면 이른 밥 먹고 전주 덕진연못 그네 줄잡으러 간다. 내일은 천중가절(天中佳節), 중오절(重五節), 단오절(端午節) 모두가 뜻을 같이한다. 단오절엔 전주 덕진연못에서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뿌리에 수복(壽福) 글자 만들어 머리에 꽂는 날이다. 단오절에는 차앵도화채, 보리단수, 죽순탕, 쑥단자, 콩죽, 개피떡을 만들어 먹는 날이다. 이날은 전국의 아낙네들이 물맞이하러 먼 곳에서 새벽길을 나선다. 총각들은 눈 맞출 처녀 찾아 북으로 남으로 동으로 서로 각양각지에서 몰려들온다. 심지어 기차 화물칸에 올라타서 조차 등장한다. 이렇게 장사진을 이루는 이유는 덕진연못은 예로부터 신선약수터로 알려졌을 터이다. 삼단머리채 덕진연못 물에 정궈 감을 일이면 선약의 효험을 얻어 1년내내 잔병치레 없이 건강해진다니, 용왕님께 빌며 뜻 깊은 단오절을 보낸다. 여인네들이 이날만큼은 부끄럼 없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덕진연못에 몸을 담근다. 부스럼, 땀띠, 눈병, 치통, 두통, 신경통, 견비통에 그야말로 만병통치다.
 전주단오 공식적인 행사는 1959년을 시작으로 반백년 넘게 명실상부 전국 민속행사중 가장 으뜸으로 꼽혔던 우리 고유 민속행사였다. 허나 근자에 들어서 행사는 축소 변질되어서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전 중요무형문화제에 선정되어 활발하게 진행되어오는 법성포 단오제, 세계유네스코무형문화제유산에 등재되어 해를 더할수록 자리메김을 다져가는 강릉단오제 등을 비교 할때면 전북도민의 한사람으로 침통해진다. 두 단오제는 풍어제 성격으로 치러지고 있다. 쌀이 곧 돈일 시기에는 전북은 6대 7대도시였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연장선상에서 농번기를 잠시 마치고 음력 5월5일 하루를 잡아 치루는 행사, 전주단오는 그야말로 전주, 전북의 정서요 자부심이었다. 풍요속의 고을이었다. 전주단오를 종교적 관점에서 볼일도 아니려니와 그렇다고 과거에 집착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전북도민의 삶은 앞으로 잘 살아 갈일만 남았다. 더 이상 뒤쳐질 일도 없다. 끝자락에 서 있기 때문이다. 잘살아가는 생활조건 중에는 중요한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오랜 시간과 함께 해온 생활의 정서문화다. 그 정서 속에는 자존심과 자부심의 역사가 내재되 있는데 그 역사 한부분에 민속문화가 자리한다. 그 지역 민속문화를 들여다보면 삶의 지수가 보인다. 동남편은 산악지대, 서북편은 평야지대를 거느렸던 전북이다. 행정, 군사, 교통, 산업, 농업문화의 중심지로 천년을 지켜온 전라감영이 위치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땅이다. 호남제일성(胡南第一成)이란 이름에 명실상부한 고장이다. 전북은 의식주가 강한 곳이다. 그래서 예술이 숨쉬는 땅이고 민속문화가 풍요롭게 이어온 곳이다. 현재 경제적 여건이 어렵다고해서 역사적으로 이어온 문화현상이 미미해져서는 안될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온 길만을 따라야 할 일은 아니다. 시대에 맞춰야 할 일은 그렇게하고 지켜나가야 할 문화는 설혹 시대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원형을 유지하며 보존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곧 후손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적인 과제다. 짊어질 짐 속에는 전주단오가 한 켠에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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