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치지 않고 불공평하지 않는다면 왕도는 크고 넓게 펼쳐질 것이며, 불공평하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다면 왕도는 평탄할 것이다”
  이는 서경의 홍범조에서 탕평에 대해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탕평이란 왕도 정치를 실현함으로써 각 당파 사이의 관계를 적대에서 연립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한다면 초당파적 정치 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탕평책이라는 말을 처음 낸 것은 조선조 숙종 때였다. 선조 이후 이미 당파 싸움이 치열해진 터라 숙종은 이 문제를 놓고 골치를 썩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각 당파의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을 지키며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려고 애를 썼지만 당시 정치 상황 탓에 여의치 못했다.
  탕평책이 빛을 본 것은 영조 때였다.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당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노론과 소론 영수들을 불러 화목을 권했다. 만약 당쟁이 지속된다면 왕권도 약화되고 나라 자체 존립이 위태롭다고 본 것이다. 또한 이에 호응하지 않는 관료들은 단호히 응징했다. 영조는 이어 성균관 입구에 “편당을 짓지 않고 두루 화합함은 군자의 공평한 마음이요, 두루 화합하지 아니하고 편당을 지음은 소인의 사심이다”는 내용을 새긴 탕평비를 세우기도 했다. 영조 뒤를 이은 정조 역시 탕평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이 머무는 방의 이름을 탕탕평평실이라고 정하고 노론과 소론뿐만 아니라 서얼출신까지 기용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과시했다.
  이렇게 영조와 정조 두 왕을 거치면서 탕평책은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당파 싸움의 근본을 치유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세상을 뜨자 정국은 외척 세도정치 시대로 접어들어 오히려 사태는 더 악화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금의 인사에서 탕평책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경제부총리와 외교부장관,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임명하는 과정서 자신의 캠프 밖에서 널리 인재를 등용했다. 박근혜 정부 사람도 있고 반기문, 안철수 진영에서 일한 사람도 포함됐다. 이전에도 박원순 캠프나 안희정 캠프에 속하는 인물들도 기용됐다. 그는 지역과 정파를 넘어서서 능력과 전문성 위주로 인사를 단행해 주목을 끌고 있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온 나라가 지역 혹은 이념으로 갈려 갈등이 심화되는 마당이어서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정책이 절실하다. 그런 견지서 문재인 정부가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운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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