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융합기술원장    이   성   수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는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쓴 책 ‘De vita Caesarum’에 나오는 말로 ‘서둘러라’를 의미하는 ‘festina’와 ‘천천히’를 의미하는 ‘lente’의 합성어다.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고 천천히 하다보면 서두를 수 없다. 그래서 ‘천천히 서둘러라’는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나 역설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이는 초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좌우명이었다고도 한다.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 암살 이후 피비린내 나는 분쟁이 계속되었는데 이를 종식시킨 옥타비아누스는 시민들의 의식에 맞춰 절대 서두르지 않고 시민이 원하는 것에 맞춰가면서 정치·사회·경제체계를 차근차근 정비해 '존엄자'(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게 되었고 팍스로마나(Pax Romana, 200년 계속된 로마 평화) 시대를 열게 되었다.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은 속도에 관한 말이다. 서두르지만 전후좌우를 고려하면서 서두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방향과 목적의식을 잃고 왜 서두르는지를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 목적 없는 질주는 가만히 앉아 있는 만 못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가 생활화 되어 있다. 오죽하면 해외여행을 나가보면 현지인조차도 우릴 보면 '빨리빨리' 할까?

우리 속담에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랴’는 말이 있다. 외출하려고 옷을 잘 갖춰 입었는데 바느질해야 할 부분이 눈에 띈다면 어찌해야할까? 약속시간은 다가오고 바늘귀에 실은 안 꿰지고 마음만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한들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바느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일이 급하고 바쁘다 해도 정해진 절차와 순서를 무시해서는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장미대선이 끝나고 문재인대통령 시대가 새롭게 열렸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보낸 전북은 ‘균형발전과 지역 몫 찾기’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새만금 사업에 거는 기대는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1991년 방조제 착공 이래 26년 동안 제대로 개발이 추진되지 않아 같은 시기에 시작한 중국 푸동과 엄청난 격차가 발생한 현실을 감안해 보면 공약사업으로 제시된 '국가주도의 속도감 있는 개발, 청와대 전담부서 신설, 공공주도 매립, 국제공항·도로 등 수송체계 인프라 구축 등'이 실효적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이러한 사업들이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절차와 순서가 있는데 대형사업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실시하는 예비타당성조사라는 필수적인 과정을 거치게 되어있어 이를 통과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경제적 타당성이 있느냐는 것을 전문기관에서 평가하는데 이른바 B/C분석(비용편익분석)을 거쳐야 한다. 수익관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하는데 산업적 인프라와 관련 마켓이 작아 수요가 적은 전북의 입장에서는 큰 애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새로운 호기를 맞이한 새만금사업에 ‘렌테’ 즉 정해진 순서를 대비하는 것은 전북의 몫이 되었다. 산학연관이 치밀하게 잘 준비한 다음 새 정부에 서둘러 달라는 ‘페스티나’ 소리를 내되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그간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에 대한 보정차원의 정책적 배려를 함께 요구해야 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자동차융합기술원에서는 새만금에 상용차 자율주행 테스트베드를 포함한 글로벌 전진기지를 조성하자는 사업을 제안하고 전북도, 전문 연구기관, 관련기업 등과 함께  타당성보고서 기획 작업에 돌입했다. 대통령공약에 반영된 자율주행사업을 상용차 생산의 94%를 점유하고 있는 전북에, 새만금에서 시작하자는 것으로 타 지역보다 앞서 준비하고 있는데 이 사업의 성사를 위해서는 산학연관, 정치권과의 유기적인 협업은 물론 '페스티나 렌테(천천히 서둘러라)'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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