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같은 돌인데 디딤돌과 걸림돌 쓰임세가 매우 다르다. 디딤돌은 남에게 더 나아갈 수 있게 뒷받침과 도움을 주는 것이요 걸림돌은 가는 걸음을 막는 방해가 된다. 우리 삶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성장하는데 필요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방해가 돼 손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 지구상에서 이 시간 같이 살아가는 큰 인연으로 동일한 시간대에 존재하고 있으니 서로를 도와 더욱 잘되게 해주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살다보면 상대적인 경우가 많다. 즉 얻고자하는 목표와 희망사항이 겹칠 때 서로 경쟁을 하면서 경쟁 상대자가 없어져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경쟁자가 못되게 훼방을 놓고 음해하거나 신체적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바로 걸림돌이다. 이 걸림돌만 없으면 내가 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방해가 되어 싫은 감정이 솟구치고 이것이 더 나가면 증오로 바뀐다.
 경쟁에서 승리하여 운 좋게 바라는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얻음에 따른 만족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긴 역사에서 경험하여 잘 알고 있다. 일시적인 권력이 그렇고 물질에 불과한 재물이 또한 같은 처지에 처한다.
 얻은 것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갖고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다. 내 손에 쥐는 순간에 만족에 따른 행복감은 잠깐이지만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조사에 의하면 사람의 행복은 소득과 일정 수준까지는 비례하나 그 이상에서는 소득향상과 행복지수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한계이다. 그래서 많은 종교지도자나 현자들은 소유욕과 탐욕을 금기의 제일 대상으로 삼아 욕심을 털어내는 것을 수련의 목표로 삼았나 보다.
 디딤돌은 얼마나 긍정적 개념인가. 나로 인하여 상대가 더욱 발전하고 더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 결과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면 그 경지가 바로 해탈의 지경이 아닐는지. 자식들을 향한 부모의 심정이 바로 디딤돌의 역할이다. 낳아서 온 정성을 다하여 잘 크도록 돌보고 교육시키면서 온 힘을 쏟고 결혼시켜 한 가정을 이루게 하는 과정에서 부모는 항상 필요할 때마다 자식들의 디딤돌이 된다. 눈을 감을 때까지 그 디딤돌의 역할을 기꺼이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진정한 교육자나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자들은 내 제자, 내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기꺼이 나를 언덕삼아 올라서게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한 분들이다. 자식과 같이 천륜의 관계로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 이를 당연시하나, 진정한 교육자나 애국자들은 제자나 민족 혹은 전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디딤돌로 희생하기 때문에 이들을 성인으로 존경하는 이유이다. 아인슈타인도 내가 많은 업적을 이룬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이 얻은 지식을 디딤돌로 활용 했다는 의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디딤돌의 역할에 만족하려는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어떻게든 경쟁자를 밟고 올라가 내가 바라는 것을 쟁취하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차있다. 가히 약육강식을 하는 동물의 세계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하는 인간이 속하게 되었다. 지금 이 시대는 상대를 배려하고 같이 성장하여 너와 내가 행복을 함께 느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디딤돌의 역할에서 너무 멀어지고 있다. 얻고자하는 소유는 한계가 없고 먼저 얻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수이나 경쟁만이 있는 사회는 모두를 지치고 불행하게 만든다. 우리 교육이 이런 수렁에 빠져있다.
 이제 우리를 다시 추슬러야 할 때이다. 서로를 비난하고 경쟁만이 아닌, 상대의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도록 국민 순화운동이 필요하다. 사고가 고착된 기성세대에 요구하는 것은 어려우련지 모르나 우리의 희망인, 자라나는 2세들에게 디딤돌의 의미와 필요성을 갖도록 교육해야한다.
 경쟁해서 내가 항상 일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우리 모두가 같이 가야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재미가 있는 분야를 찾도록 교육하고 상대의 일이 더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딤돌 역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가지 않으면 서로 피해를 본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의식을 공유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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