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지역 특수성을 살리고 자치성을 추구하는 주의라고 정의하면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 이 지역주의가 바람직스럽지 못한 방향으로 빠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같은 지방 출신끼리 동아리를 지어 다른 지방 출신자들을 배척하고 비난하면 하나의 병리현상이 되고 만다. 귀속감이나 애착심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강한 배타심과 편견, 나아가 적대감의 수준으로 되면 사회를 병들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는 전통적으로 호남과 영남의 문제였다. 주로 영남패권주의와 이에 맞서는 호남의 수세적 저항의 구도였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 백제의 멸망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뒤 통일신라는 백제유민들을 탄압했다. 이에 반발해 부흥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고려조에는 왕건의 훈요십조가 다시 옛 백제 땅인 호남을 옥죄었다. 차령 이남 그러니까 전라도 지방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조선조에는 한 때 호남 차별이 없었지만 정여립의 모반사건 이후 다시 전라도 차별이 현실화 됐다.
  현대 정치사에서도 지역주의는 맹위를 떨친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 김대중 후보가 맞붙었는데 개표 결과에서 지역주의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비록 몰표는 아니지만 영남 출신 박정희 후보는 연고지에서 압승했고 호남 출신 김대중 후보 역시 호남에서는 이겼다. 1980년대 이후는 지역주의 폭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에 연이어 출마한 김대중은 전라도에서 80%가 넘는 득표율로 싹쓸이를 했다. 반면 영남에서는 한 자리 숫자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주의가 퇴조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최근 여론조사들에 의하면 영호남 지역의 몰표 현상이 사라지고 있다. 호남에서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표를 나눠 갖고 있고 대구 경북에서도 야당 후보들이 약진하는 반면 보수 후보인 홍준표가 15% 안팎으로 고전하고 있다. 과거 특정 정당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뽑아주는 ‘묻지마 투표’ 행태가 이번에는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이다.
  그간 지역주의의 횡행에 대해 정치권이 이를 조장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지역적 배경을 득표 전략으로 활용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대선에서 지역감정은 한결 약화된 양상이다. 이대로 지역주의가 사라지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물론 일부 지적처럼 더 두고 볼 일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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