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랑문학 마을에 만들어진 하열빈 역 전경.

김제시는 대한민국 5년 연속 대표축제로 선정된 농경문화 중심지 벽골제가 있다. 넓은 공간의 구석구석에 살아 숨 쉬는 전통문화의 향기와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많아 농경문화를 직접 느껴 볼 수 있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러나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을 배경으로 만들어낸 테마 공간인 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 강점기를 연상케 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일제의 잔혹한 만행과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과 저항의 역사 속으로 꼭 한번은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시간여행을 떠나 봐야 할 곳이다.

'징게맹갱외에밋들'. '징게'는 김제, '맹갱'은 만경, '외에밋들'은 너른 들을 뜻한다. 우리나라 대표 곡창지대인 김제 만경평야의 옛말이다. 1900년대 초부터 일제의 야욕을 채울 전쟁터에 군량미를 보내기 위한 수탈의 배경을 소설가 조정래는 이 과정을 ‘아리랑’에 송두리째 담았다.

아리랑 문학마을(전북 김제시 죽산면 화초로 180)은 소설 ‘아리랑’의 무대를 현실에 재현해 아픈 시절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리랑’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김제시 죽산면 옛 내촌·외리 마을 일대에 터를 잡았기에 살아있는 문학을 체험할 수 있다.

아리랑 문학마을은 크게 홍보관, 하얼빈역, 내촌·외리 마을, 근대 수탈 기관으로 구성된다.

홍보관 1층은 벽면을 아예 ‘아리랑’에 대한 텍스트로 꽉 채웠다. 소설의 대략적인 흐름을 정리한 줄거리, 인물 묘사와 주요 인물 관계도, 소설 속 핵심 일화 발췌문까지 짜임새 있게 구성돼 어떤 소설인지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홍보관 2층에는 김제 출신의 독립투사들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낯선 영웅들은 대의를 위해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일제에 항거했다. 부당한 시대의 참상이 그들의 결기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총을 들고 맹렬히 돌진하는 독립군 동상이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근대사 최고의 장면을 재현한 하얼빈역과 설움이 깃든 내촌·외리 마을에 들어서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리랑 문학마을의 하얼빈 역은 1910년대 중국 하얼빈 역을 60% 정도로 축소 재현해 놓았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1909)다. 역내 대합실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면 근대사 최고의 장면이 동상으로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안중근 의사가 방아쇠를 당기자 민족의 응어리를 실은 총알 한 발이 제국의 심장을 관통한 장면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열차에서 내린 직후였기에, 그 시절 증기기관차도 함께 출연하여 생생함을 더한다.

하얼빈역 광장 앞에 이민자 가옥이 있다.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타향으로 떠나간 사람들이 지은 너와집과 갈대집을 재현했다. 너와집은 아쉬운 대로 최소한 집의 구실은 할 것 같으나, 갈대집은 너무나 열악하다. ‘아리랑’에서는 '갈대움막'이 등장한다. "갈대를 무더기무더기 베어 모은 사람들은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움막은 땅을 사람 키 깊이로 파내고 그 위에 갈대로 지붕을 해 덮는 것이었다."

내촌·외리 마을은 소설 속 주요 인물인 손판석, 지삼출, 감골댁, 송수익 등의 가옥을 재현해 만들었다. 조그만 야산을 등지고 단출한 초가집들이 사이좋게 이웃해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촌락이다. 하지만 소설에 묘사된 집주인들의 삶은 마을의 외관처럼 평화롭지 않다.

손판석은 의병과 독립군 연락책으로 활약하며 갖은 고생을 한다. 지삼출은 친일파 장칠문의 악행에 보복을 하다 주재소에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고 후에 의병으로 활동한다. 감골댁은 빚 때문에 맏아들이 하와이로 팔려가고, 두 딸이 일본 앞잡이에 수모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는다. 가난 때문에 큰딸이 부잣집에 첩으로 가겠다고 하자 "우리는 굶어도 함께 굶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한다"며 눈물을 쏟아낸다. 평화로운 풍경의 마을에 깃든 서러운 사연을 알게 되면 누구든 애잔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일제의 악랄함으로 지은 근대 수탈 기관은‘아리랑’의 아픔이 가장 잘 전해지는 곳이다. 면사무소, 주재소(일제강점기 순사가 근무하던 기관), 우체국, 정미소로 구성된다.

면사무소는 토지 수탈의 만행에 앞장선 기관이다. ‘아리랑’에서 죽산면 면장으로 임명된 친일파 백종두는 지주총대(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을 추진하는 선봉대)를 구성해 농민을 압박한다.

말이 토지조사사업이지 실은 비밀스런 악조항을 달아 조선의 땅을 빼앗겠다는 계략이다. 죽산면사무소 내에는 망원경, 나침반, 카메라, 주판, 등사기 등을 전시해 놓았다. 하나같이 악행의 도구로 쓰였을 것이다.

우체국은 일제의 정보수집기관에 지나지 않았고, 정미소는 오로지 일본인을 위한 쌀을 도정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주재소만큼 무서운 곳이 또 있을까. 주재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취조당하는 소리가 흘러나와 섬뜩함을 자아낸다. 유치장으로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채찍 등 온갖 고문 도구가 걸려 있다. 철창 안으로는 피폐한 수감자의 애처로운 눈빛이 벽화로 표현돼 일제의 잔학무도함을 느낄 수 있다.

김제 아리랑문학마을은 우리나라의 잔혹했던 일제강점기 역사가 고스란히 전시되어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역사이다.

/김제=최창용기자.ccy@jl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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