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교활함의 상징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간에 여우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이 동물의 약삭빠른 성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개는 악역이어서 사람들에게 썩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우선 서양의 이솝우화에는 여우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온다. 두 마리 개가 고기 한 토막을 놓고 다투자 여우가 중재를 자청하고 나섰다. 고기를 둘로 가른 뒤 한 쪽이 많다며 베어 먹더니 이번에는 다른 쪽이 많다며 역시 한 입 먹었다. 이런 식으로 결국 고기토막을 다 먹어치웠다. 또 다른 우화는 독수리와 한 나무에서 사는 여우 경우다. 독수리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 먹으려 하자 여우는 불쏘시개를 물고 왔다. 만약 새끼를 내놓지 않으면 독수리와 그 새끼가 사는 둥지를 불태우겠다며 위협을 가해 항복을 받아낸다.

우리나라에서 여우는 교활함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요사스런 동물로 각인돼 있다. 아마도 대표적인 것이 구미호일 것이다. 꼬리가 아홉 달린 천년 구미호는 신통력을 가져 흔히 사람으로 변신한다. 미인으로 모습을 바꾼 다음 사람에게 접근하는 게 보통이다. 이처럼 온갖 술수와 변화를 부리며 인간을 괴롭히는 요망스런 동물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여우를 소재로 한 속담도 흔하다. 여우가 뒤에 호랑이를 세우고 거만을 떠는 호가호위에서부터 ‘여우 굴도 문은 둘이다’, ‘여우가 두레박을 쓰고 삼밭에 든 것과 같다’는 등 그 숫자가 아주 많다.

실제 여우는 영리하다. 약간 게으름까지 피우는 여우는 굴을 파기 싫어 오소리가 판 굴을 교묘한 수단을 부려 빼앗기도 한다. 또 조심성도 많아서 움직일 때마다 신중을 기한다.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된 토종 여우가 소백산 국립공원에 방사되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최근 소백산 일대에 새끼를 가진 여우 암컷 13마리를 순차적으로 방사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총 18마리의 여우가 야생에서 서식하고 있다. 앞으로 새끼가 나오면 그 숫자가 30여 마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불법 엽구 등 인위적 위협요인들을 제거해 서식지를 안정화 하는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한다.

여우는 오랫동안 사람 가까이서 생활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모피를 노린 남획과 서식지 파괴, 맹독성 쥐약 등으로 거의 멸종단계에 들어섰다. 이는 가슴 아픈 일이자 자연의 엄중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유달리 꾀가 많은 여우도 인간의 자연 파괴 앞에서는 무기력했다는 증거다. 이번 방사 사업이 성공을 거둬 야생에서 토종 여우를 쉽게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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