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4차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일컫는 4차산업혁명은 특히 지식구조화의 방식에 혁신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식구조화란 지식구조에 대한 이해와 전체상의 부감을 위해 특정한 형식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지식구조화 최초의 형태는 파피루스나 양피지, 죽간 같은 원시 형태의 책이었다. 문자의 발명과 저장매체의 발전이라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기억 속에만 존재했던 지식을 육체와 분리된 외재적 기억으로의 저장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공동체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필사에 의존했던 소량생산 소량소비의 지식경제방식은 지식의 대중화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생산과 소비의 중추를 이루는 소수의 인텔리계층에게 지식권력은 집중되었다. 소수에 집중되었던 지식권력에 대한 최초의 혁명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에서 시작되었다. 기술의 도움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가능해지고 지식이 상품으로 시장에 진열되기 시작했으며, 작가와 독자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신분이나 지위에 의해 선천적으로 부여됐던 지식권력은 후천적인 노력(연구와 저술)에 의해 쟁취할 수 있는 성과가 되었다. 지식공동체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작가와 독자의 관계가 지식을 주고받는 일방적인 호혜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지식권력은 여전히 한쪽에 있었다.
지식권력에 대한 또 한 번의 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디지털기술의 발전으로 시작되었다. ‘네트워크사회’와 ‘하이퍼텍스트’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지식구조화혁명은 지식의 생산과 소비, 작가와 독자의 관계, 지식의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아날로그적 질서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미국 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es)은 현대 정보 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라고 불렀다. 네트워크 사회는 자본과 노동, 사람과 지식과 정보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서 서로 연결된 사회를 말한다. 정보와 상품, 자본과 사람과 지식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됨과 동시에 이동한다. 네트워크 사회는 데이터와 자료와 지식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자료, 지식 그리고 데이터는 개별적으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하나의 구조물(architecture)을 이루고 있다. 자본과 상품의 네트워크, 인간의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의 네트워크, 자본과 노동, 상품 그리고 지식, 정보 이런 모든 것들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서로 흐르고 얽히는 사회가 네트워크 사회다. 플로(flow)는 흐른다는 말인데, 흐름 사회에서는 사람도 흐르고 정보도 흐르고 자본도 흘러 다닌다. 자본과 노동이 국경 없이 흘러 다니고 국적이 다른 자본과 노동이 결합한다. 정보와 지식도 인터넷망을 통해 국민국가의 지리적 경계를 넘어 전 지구 범위에서 흘러 다닌다.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흐름의 사회가 네트워크 정보 사회다.
지식구조화 개념은 도쿄대 총장을 지낸 고미야마 히로시가 2004년에 저술한 ??지식구조화 Structuring Knowledge??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구조화지식, 인간, IT 이들의 상승 효과로 방대해지는 지식에 적응하는 뛰어난 지식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히로시는 세분화된 전문지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총제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식을 찾는 지식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지식의 모듈화를 통한 지식의 네트워크와 지식촉매를 강조한다.
하이퍼텍스트를 구조화 지식(상호관련된 지식군)을 연결하는 지식구조화의 새로운 방식으로, 네트워크 정보사회는 구조화 지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안된 사회 구조로 재정의할 수 있다. 히로시는 지식구조화를 인간의 지적 활동 영역으로 보았지만, 인간의 지적 활동이 독서를 통한 선행 텍스트의 모방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면, 인간과 텍스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타자적 경험이 독서이고, 그 경험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인지네트워크 안에 기억의 방식으로 저장해 놓은 타자의 지식이 구조화 지식이며, 지식이 텍스트에 저장되는 방식이 지식구조화이다. 네트워크사회의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네트워크로 인해 지식이 더 이상 개별, 분류, 자족, 완성이라는 폐쇄적인 프레임 안에 갇혀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구조화의 방식이 바뀌면 지식생태계와 지식공동체, 그리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지식노동자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네트워크사회와 하이퍼텍스트는 4차산업혁명이 새롭게 요구하는 지식구조화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대학(University)의 탄생이 근대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다면, 이제 대학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용욱 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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