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아래엔 / 국물에도 / 회 무침에도 / 벚꽃잎이네”
  일본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시인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다. 벚꽃놀이의 재미를 시로 풀어낸 명구다. 일본인들의 벚꽃 사랑은 집착에 가깝다. 아마도 세상에서 벚꽃을 가장 좋아하는 민족이 일본인들일 것이다. 일본 기상청은 연전에 벚꽃 개화시기를 잘못 예보했다가 엄청난 반발에 직면해 급기야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또 아오모리 택시기사들은 벚꽃 철에 1년 수입의 3분의 1을 벌어들이며 날씨가 궂어 수입이 줄면 보험에서 보상을 받는다.
  특히 군국주의 시대 ‘산벚꽃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있다.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절정기에 속절없이 지는 모습을 전통 무사의 충성심으로 비유한 것이다. 무사도는 일본의 상징인 벚꽃과 더불어 일본이라는 토양에서 핀 고유한 꽃이 됐다. 군주를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정신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태도가 왕과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변해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 벚꽃 사랑이 일제 강점기 한국에 이식됐다. 일제는 한반도를 병탄한 뒤 창경궁을 헐어낸 다음 그 자리에 동물원을 만들고 벚꽃을 대대적으로 심는 짓을 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 그들의 국화나 다름없는 벚나무를 심었다. 하나미 즉 벚꽃놀이는 일제 강점기 우리에게 강요되다시피 했다. 그 탓에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4월 전후면 벚꽃이 화제가 된다. 매스컴들이 벚꽃 개화기부터 질 때까지 한시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쌍계사나 전군가도, 진해 등 벚꽃 명소에는 인파가 그칠 줄 모른다.
  빅 데이터 분석 업체인 다음 소프트에 의하면 우리나라 봄의 전령사 자리를 벚꽃이 차지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우리 고유의 봄꽃인 진달래와 개나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다음소프트가 2016년 기준으로 블로그와 트위터, 뉴스를 분석한 결과 벚꽃 언급량은 214만3000여 건으로 개나리 12만7000여 건, 진달래 21만여 건을 압도했다. 그리고 벚꽃이 가진 의미도 단순히 예쁜 꽃을 넘어서 아련함, 설렘, 사랑의 이미지 등이었다. 요컨대 한국에서도 봄꽃 하면 벚꽃이 맨 먼저 등장하는 셈이다.
  이를 놓고 벚꽃 특유의 감성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즉 봄 한철 생활 주변에서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며칠 만에 져버리는 생태가 화려하고 조급한 성향의 세태에 딱 맞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벚꽃이 득세하는 데 대한 감정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일본의 꽃이라는 인식 때문이리라. 옹졸한 생각 같지만 일본인들이 열광하는 꽃에 우리도 가세하는 모양새가 영 개운치 않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