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산업시설에도 봄이 왔다. 팔복예술공장 무료대관전 두 번째로 탄탄한 실력과 개성을 지닌 3명의 미술가 정영진, 박두리, 박철희가 저마다의 빛깔로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 조금 멀어서 더욱 쉼이 있는 전시장으로 향하는 것도 좋겠다.

정영진(21일~4월 7일, 1층 전시공간과 창고동) 작가는 역설적이고 강렬한 느낌의 ‘무의미의 의미’를 주제 삼았다. 캔버스, 석고상, 영상, 설치를 오가며 화두를 던지는데 바로 과정이다. 미술가라면 한 번쯤 꿈꾸는 걸작으로 향하던 중 절차의 가치와 역할을 깨달아서다.

이는 시작은 있으나 끝은 필요 없는 낙서로 이어졌다. 숨긴 의식을 나타내는 최고의 도구이자 무의미한 걸 의미 있게 바꾸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실제로 선, 면, 색이 두서없이 휘갈겨 있고 영상과 석고상까지 활용해 자유로움과 다채로움을 극대화한다. 그럼에도 나름의 질서와 특징이 묻어나 그린 이의 정서를 가늠케 하는 한편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무의식은 뭘 원하고 있는지.

박두리(21일~4월 7일, 1층 전시공간) 작가는 회화로 ‘소외된 감정’을 말한다.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비슷한 상황을 접했을 때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과거의 감정과 기억들을 소외됐다고 표현한다.

팔복동에서 나고 자란 그는 팔복동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을 녹여낸다. 이목구비가 불분명하거나 뒤틀렸지만 얼굴형만큼은 뚜렷한 초상화는 우리의 밑바탕이 되는 지난날을 형상화한 거 같다. 팔복동 공간의 의미를 반추할 뿐아니라 예술가로 살아온 화가의 시선도 접할 수 있다. 박철희 작가(23일~4월 7일, 1층 전시공간)는 인간의 황금기, ‘만개’에 주목한다. 당신의 인생 속도는?, 황금기는 존재하는 걸까, 만개 된 꽃을 본 적 있는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되짚는 게 시작이다.

만개의 인내부터 예술의 가치, 만개의 최후에 이르는 다소 무겁고 진중한 작업은 깊은 사고와 날카로운 통찰력, 특유의 재치를 거쳐 간결하고 유쾌하게 거듭난다. ‘만개의 인내’에서는 삶의 무게를 여기저기 부서지고 흠집 난 돌과 벽돌, 스테인리스로 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사안내문까지 덧붙인다.

‘본 공사는 당신의 편의를 위한 개선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시행될 예정입니다’라며 ‘당신을 바꿔 드리겠습니다’라는 공사 안내문과 명칭은 웃음과 함께 핵심을 전한다.

전시 기간 도슨트(해설사)에게 작품과 공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후 전시는 사진연구 봄 회원 20명의 사진 설치전 ‘길 위에 서다(4월 11일~4월 30일)’다. 063-283-9221./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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