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가 조.일전쟁(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공격으로부터 전주성 전라감영을 지켜내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도가 없었더라면 나라가 없었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갈파를 역사에 남기게 한 웅치.이치전투 대첩지 성역화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웅치.이치 대첩지 성역화는 대첩을 거둔 1592년으로부터 425년만의 일로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런데도 늦게나마 당시 호국충혼을 제대로 기릴 수 있게 되고 잃어버린 전라도의 자존을 되찾게 될 것 같아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대첩지에는 현재 기념비와 참전 장군 기림비가 있으나 대첩의 역사적 가치에 비춰 초라하고 소홀하다.
  웅치.이치대첩은 한산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 3대첩과 함께 4대첩으로 평가된다. 웅치.이치대첩은 전라도가 조선 8도 중 유일하게 국토를 보존해 조선군의 군수와 병력 공급기지가 되게 했다. 마침내는 침략군을 몰아내고 조선이 최후승리를 거두게 했다.
  역사적 의미가 3대첩에 못지않다. 웅치.이치 대첩을 이룬 같은 날(음 7월 8,9일), 한산도 대첩도 거뒀다. 전라도 육군과 수군이 육지와 바다서 대첩을 이뤄 국가를 보위했던 것이다. 호국충렬의 고장 전라도의 자존(自尊)이고 긍지가 아닐 수 없다.     
  웅치.이치 전적지 성역화는 전북도가 정도 1000년을 맞아 전라도 천년 역사의 재조명에 나서고 있어 그 의미가 새삼 돋보인다. 전주시가 전라감영 복원에 나선 것도 의미를 더한다. 웅치.이치 대첩으로 보존했던 바로 그 전라감영이 일제 때 전북도청 건물로 대체됐다가 도청 이전으로 당시 모습의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
  전북도는 국가사업으로 성역화를 추진할 것이라 한다. 호국기념관 추모비 천인의총 호국안보공원 격전지 옛길 복원 등이다. 군사적으로 웅치.이치대첩의 후속 전투였던 금산전투의 7백의총은 이미 국립묘역으로 성역화 돼 있다.
  웅치.이치 전적지 성역화와 함께 웅치.이치전투의 전쟁사적 재조명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웅치.이치 전투가 참전 장군들의 개인적인 충렬과 무용 중심의 조명에 그쳐 있을 따름이다. 전라도 방어전에서 웅치.이치 대첩이 갖는 군사전략적 의미와 대첩이 조선의 최후 승리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대첩이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도 그 때문으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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