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진 식(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11시 21분, 헌법재판소 대법정에 울려퍼진 이정미 헌법재판소소장 권한대행(당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숨죽이고 그 결과를 기다리던 전국민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 선고에 의해 최 아무개에서 비롯된 국정농단이 불러온 소용돌이의 제1막은 국민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한 느낌을 안기며 일단 막을 내리게 되었다.

소용돌이는 언제나 깊이 패인 흔적을 남긴다. 이번 국정농단이 가져온 소용돌이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국정에 대한 고민은 고사하고 옆 사람과 일상적인 대화조차 나누지 않으면서 지극히 사적인 지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스스럼 없이 사용하는 대통령의 모습, 이러한 대통령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자신의 권한과 본분이 무엇인지 모른 채 충실히 지시를 따르는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모습 그리고 이를 틈타 피해자인 양 행세하며 빠른 계산기를 두드리는 기업인들의 모습 등은 하루하루를 땀으로 채워가며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더욱더 충격적인 것은 탄핵심판에서 박전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대리인단과 탄핵에 반대하는 그룹이 보여준 인식과 언행이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 그리고 재판과정을 통하여 이미 드러난 국정농단을 입증하는 ‘팩트’에 대해서조차 이를 부인하고 억지 주장을 하는 데에는 어이없음을 넘어 깊은 좌절에 빠지게 한다. 지독한 소통의 부재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소통의 부재가 이번 국정농단과 같은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즉,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위와 같은 일을 우리들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이미 드러난 사실과 상식에 대해서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비춰 자신의 유리한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장면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행의 효과는 제한적이며 그 결과는 비참하다. 자신과 자신의 그룹을 벗어나는 순간 그 언행은 힘을 잃고 흉측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 ‘끼리끼리만 통하는 언행’의 비참한 최후이다.

우리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열정적으로 게다가 가장 앞줄에 서서 글로벌리즘을 외치고 있는 나라이다. 자신이나 한국사회 모두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글로벌리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는 거창한 조건들이 여기저기서 제시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를 갖는 일이다. 이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한 글로벌리즘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어떠한 목표에도 쉽게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

이번 최 아무개에 의해서 비롯된 국정농단 사태가 몰고 온 소용돌이는 이제 겨우 1막을 마쳤지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숙제를 우리들에게 남겨주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끼리끼리만 통하는 말’을 넘어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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