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고 주린 몸들 추위를 어이하리/ 얼은 파초같이 그 속마저 썩을세라 /피려는 매화와 함께 봄은 다시 돌아온다.
가람 이병기의 매화에 관한 시다.
가람께서는 난초와 매화의 기품으로 당시 일제의 어두운 세상을 참고 견디고자 하였음이다. 마치 요즘 시국 상황이 오버랩 된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상징 꽃이다. 한 겨울 추위보다 봄이 오기 전 추위가 더 매섭다. 그 서슬 퍼런 추위를 뚫고 피어나는 꽃이 매화다. 추위에 피어나 동매요, 눈 속에 핀다 해서 설중매다. 봄에 피는 그 어떤 꽃보다 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기 때문에 꽃의 우두머리라고 칭한다.
  조선 초기에 일종의 매화 열풍이 불었다. 문인 김수온의 글은 매화사랑에 대한 당시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꽃은 사람에게 '우물(尤物)인지 오래 되었는데 매화가 더욱 심하다.
  이 때문에 시인 묵객이 시를 지어 찬미하는 노래를 짓고, 왕공대인이 뜰에 다 심었다. 심지어 할 일 없는 사람이나 숨어 사는 선비, 산 속의 승려의 무리까지 또한 화분에 대화를 담아놓고 기른다. 누구나 매화를 중시할 뿐만 아니라 사모하고 아껴서 죽기를 작정한 것처럼 하기에 이른다."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 때,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삶의 의욕과 희망을 전해준다. 혹한기를 이겨내고 불굴의 정신으로 꽃을 피우는 매화의 이미지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표현되었고 여성의 지조, 절개, 순결과 정절을 의미하며 여성의 기다림과 희망에 비유되기도 했다.
  절개 곧은 옛 선비들은 매화를 사랑했다. 곧은 기개로 피어나고 은은한 향이 남달라서다. 사군자가운데 맨 첫머리에 위치해 매난국죽이라 한다. 매화는 정치적 좌절 또는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하여 춥고 배고픈 시 절을 견디어야 했던 선비들에게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대변해주는 꽃이었다. 성삼문은 호를 ‘매죽헌’ 이라고 하였다.
  매화가 우리와 함께 해온 것은 매실이 긴히 쓰였기 때문이다. 한방에선 매실을 오매라 하며 설사를 멈추게 하고 기생충을 없애고 소화불량, 설사, 이질에 효험이 있고 눈을 맑게 하는 건강식품이었다.
  조선시대 매화에 미쳐 매화를 가장 잘 그렸다는 화가 조희룡이 있다. 용이 승천하는 모양의 매화나무에 가득 핀 매화를 그렸다. 오래된 시간이 쌓인 매화나무의 묵직함에 어지럽게 피어난 그런 꽃송이들이다. 유배지 임자도에서는 매화가 힘이 되었으리라.
  요즈음 대한민국은 무속인에 불과한 한 여인이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삼고 국정을 좌지우지한 정치스캔들로 최악의 국제 망신을 떨고 있다. 게다가 태극기를 보면 경계심부터 생긴다.
  태극기를 몸에 망토처럼 휘감고 웬 성조기까지 흔들어댄 슬픈 삼일절에 백암 박은식 선생의 손자이기도 한 박유철 광복회장은 무분별한 국기사용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성한 국기에 대한 모독행위며 역사적인 3·1절에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국격을 떨어뜨리고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일제의 총칼 앞에 무참히 산화하신 3.1독립운동 선열들이 지하에서 통탄할 일이다.
  국정농단 사태에 어둠의 권세와 사익을 좇아 양심을 져버리고 영혼을 잃은 채 값싼 향을 파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의롭지 못한 시대의 난신적자들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중기 문신 신흠은 매화와 관련된 한시를 남겼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梅香·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 매서운 추위에도 향을 팔지 않고 때가 되어야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모름지기 사람의 처세는 근본을 일그러뜨리지 않고 꼿꼿해야 함을 의미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매화향 가득한 봄은 어김없이 온다. 어찌 국민이 열망하는 민주의 봄을 막을 것인가. 추위가 극성을 부리면 부릴수록 봄 매화는 아름다움을 더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일이 다가오며 정치권에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속에 꼿꼿한 매화가 침묵하고 있다.

(양규창/ 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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