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들과 다른 길을 걷는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했다는 이유로 그 각각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영화계?음악계?미술계?문학계 등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으며, 이 땅의 시인들 또한 그 속에 담겼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시선집 <검은 시의 목록>이 출간됐다. 안도연 시인이 엮은 이 책은 원로시인 신경림, 강은교부터 박준, 박소란 등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99명 시인의 시가 실려 있다.
  이들은 그동안 꾸준히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내왔다. 그들이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왔던 까닭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엮은이의 말’)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블랙리스트라는 멍에이자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로 명명된 이들은 아름답고 찬란한 시를 써온 시인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름다운 세상 모습을 글로 옮기고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는 글을 써온 이들이다.
  <검은 시의 목록>의 출간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인들을 옥죄려고 했던 이들에게 여전히 시인들이 주눅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진정한 목적은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힌 이들이 사실은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시를 써왔는지 알리는 것이다. 독자들이 99명의 고유하고 깊은 시를 읽다 보면, 이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여린 것을 아끼는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전북 출신 블랙리스트 시인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군산 출신인 숭의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강형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전 사무총장 정우영 시인, 정읍 출신의 박형준 시인과 박성우 시인, 전주 지역의 이병초 시인, 젊은 작가들로는 최세운 시인이 참여했다.
  이번 책을 엮은 시인 안도현은 “누군가는 시인들을 검은색 한 가지로 칠하려 했지만, 시인은 그리고 인간은 한 가지 색으로 결코 칠해질 수 없는 존재다”라며 “우리 시인들이 앞으로 고유한 자기색으로 더욱 깊어지고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다고 이야기했다. 
  전주출신인 최세운 시인은 블랙리스트에 대해 "감시와 통제로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고 제한하는 빅브라더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며 "문화 검열이라는 폭력 앞에서 99인의 <검은 시의 목록>는 새 시대를 향한 간절한 외침과 함성으로 울려 퍼질 것으로 확신한다"는 말을 전했다.
  걷는사람. 1만원.
/이병재기자·kanadasa@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