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고집스럽게 시도해 왔다. 최근 교육부는 국민들의 거센 반대 여론에 밀려 우왕좌왕하더니, 당초 올 3월부터 전국 중·고교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기존의 국정화 방침을 철회하였다. 그러나 국·검정 혼용방침을 밝히며 국정교과서 사용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갖는 오직 한 종류로만 발행하는 교과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박정희 유신시대에 제도화 되었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검인정 제도가 자리를 잡는 듯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 와서 다시 국정화로 회귀함으로써 다시 유신시대로 되돌아 간 셈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패러다임으로의 회귀가 지금의 박근혜 게이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겹쳐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현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내용에 관한 논란으로 주로 근현대사와 관련되어 있다. 즉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시기 및 건국절,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미화, 친일?독재?분단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경향 등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또 하나는 추진과정에 대한 논란이다. 요컨대 대부분이 반대하는 역사학계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부가 주도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집필자 선정이 투명하지 못해 일명 복면집필이라는 비판과 함께 집필기준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정 역사교과서는 ‘좌파척결’과 ‘보수 가치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청와대를 중심으로 기획되고 진행되었음이 드러났다. 청와대는 이 사실을 덮기 위해 교육부와 막대한 예산을 동원하여 국정 역사교과서를 홍보했고, 보수우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에 국정교과서 찬성 시국집회를 열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 정부는 대부분의 역사전공자들이나 학자, 역사교사, 그리고 수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목을 매는가? 그것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정책에 숨어있는 의도가 지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낡은 시대의 역사적 인식을 되살려 내어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이념 전쟁으로 국민들을 끌어들이려 하는 반민족적 반헌법적 폭거라는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는 역사를 악용하려고 하는 자들에 의해 시도되었고, 정당성이 미미한 자신의 권력에 대한 미화를 통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재구축하는데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의도와 함께 또 다른 측면에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막아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점에서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국정교과서는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하여 교과서를 만드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관점에서 역사가 기록되고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권의 시각에서 선택된 지식을 절대적인 가치라고 가르칠 수 있다. 역사가 살아있는 권력의 입맛대로 기술되어 독재를 독재라 기술하지 못하고, 쿠테타를 혁명으로,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가르쳤던 부끄러운 과거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요했던 시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학생이나 교사에게 아직 교과서가 성전처럼 간주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하나의 교과서로 공부하게 되는데 이렇게 될 경우 교과서에 제시된 사실이 특권적 지위를 갖게 되며,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이 표준적인 해석으로서의 의미와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획일적인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역사수업이 현재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지식위주의 암기식 수업방식에 갇힐 수 있다.
  셋째, 세계의 흐름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는 심각한 역사의 퇴행이다. 교과서는 OECD의 대부분의 국가들과 미국, 중국,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검인정이나 자유발행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베트남과 북한, 그리고 이슬람의 몇몇 나라에 불과하다. 세계 많은 나라들은 역사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역사교과서를 검인정이나 자유발행 제도를 통해 다중적 시민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대표시절 “어떤 경우든지 역사에 관해서 정권이 재단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스스로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반대의 목소리에 대해 눈감고 귀막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올인 해 왔다. 역사교육은 권력자가 자기 입맛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설득력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학계 뿐만 아니라 국민간의 사회적 갈등도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덮기 위해 교과서를 국정화로 만들어 편향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반민족적이고 반헌법적인 폭거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부인하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역사교과서를 바꿔 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올수도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