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키케로는 기원 전후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시기를 치열하게 산 인물이다. 정치가이자 철학자였으며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는 무명 변호사에서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까지 지내면서 여러 방면에서 공을 세웠다. 후세가 기억하는 그의 업적 중 후마니타스가 단연 돋보인다. 후나미타스는 인문학의 대상이 되는 인물 혹은 집단이라는 뜻이다. 그는 젊은이들을 교육 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 용어를 최초로 썼다. 요컨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교육 개념이었다.

인문학 개념은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의 지배자 코시모 데 메디치에 이르러 화려한 꽃을 피운다. 그는 메디치 은행을 전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체로 확대시킨 걸출한 인재였다. 그런데 정치가이자 경영자이던 그는 유독 문화예술과 고전을 사랑했다. 유럽 최초의 공공도서관을 세운 이도 그였으며 르네상스의 토대를 닦은 것도 그의 업적이다.

후마니타스 즉 인문학은 이후 근세에 이르러 고전 교육의 핵심이 된다. 18세기 프랑스와 19세기 영국, 미국이 그 절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문학은 비실용적 학문으로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에서의 인문학마저 시들어가고 있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서는 인문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인문학이 성세를 이루는 분야가 있다. 바로 CEO들의 필수과목이라는 인식이다. 경영자들은 숫자로 딱 떨어지지 않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인문학의 힘을 빌린다. 그래서 최고 경영자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인문학 강좌다.

전주시가 인문학 중심도시를 표방하면서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웠다. 올해 전주시는 ‘인문학으로 행복한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강좌 수준을 벗어나 권역별 평생학습기관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인문학 콘서트와 재능기부 운동 등이다. 지자체들이 인문학에 열성을 보이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지만 이렇게 강력하고 체계적인 운동으로 밀고 나가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인문학은 사람의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구체적 현실문제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연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현실적인 CEO들의 필수과목이 됐다. 나아가 시민들의 교양이자 행복으로의 안내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전주시의 인문도시 건설 시도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내실을 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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