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를 키워야 전북이 산다
 유기상(전북대 이재연구소 운영위원, 전북대 초빙교수)

  우리 전북선열들이 주도하여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동학농민혁명은 오천년 민족사의 빛나는 한 장이었다. 요즘 죽창대신 정의의 촛불을 든 시민의 힘으로 그 강고하고 뿌리 깊은 기득권과 구악과 적폐의 상징인 박근혜대통령 탄핵을 당차게 해내고 있다. 정의의 계란은 불의의 거대한 바위도 깨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역사의 현장이다. 필자는 이 촛불시민혁명을 분수령으로 정의로운 시민주권의 새나라를 만들고, 아래로부터의 평화적 시민혁명이 성공하는 자랑스런 민족사가 시작하리라 확신한다. 시민혁명의 마무리는 즉각적인 분권형 개헌을 통한 국민주권의 강화와 양극화 해소, 균형발전을 확고히 하는 제도혁신, 정권교체, 세대교체, 시대교체라는 역사적 소명을 완성하는 일이다. 숨가뿐 혁명과정에서 개헌논의와 조기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집권논의들이 활발하다. 그런데 자천타천 거론되는 수많은 대권후보 중에 아직 전북인이 없다는 것이 또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낙후전북을 탈피하는 근본방책이 큰사람 키우기이고 집권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고금의 역사와 현실정치에서 국가의 인사와 재정분배는 철저하게 힘대로 나뉘어진다. 정권에서 소외된 전북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이 국가예산 따오고 국가사업 하나 챙기는데 얼마나 힘이 들고 자존심 상하고 맥빠지던가?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장관하나 없는 힘없는 전북의 현실이다. 호남차별과 인사홀대는 조선후기에도 우리 선조들을 슬프게 했었다. 18세기에 신경준, 위백규와 함께 호남 삼대천재 실학자라고 불리던 고창의 이재 황윤석은 천하를 경륜할 식견을 가진 대학자였다. 그러나 호남출신에 배경이 없어서 현감이란 미관말직에 머물러 포부를 다 펴지 못하였지만, <이재난고>라는 귀중한 국보급 문화유산을 남겼다. <이재난고>는 황윤석이 10세부터 63세로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평생을 기록한 일기다. 조선후기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생활사 자료의 압권이다. 현존하는 일기자료중 가장 방대하고 세밀하여, 총 57권에 한자원문 530만자에 달하는 분량으로, 그간 전북대학교의 연구를 시작으로 한국학연구원에서 초서를 풀어 한자원문 10책으로 겨우 정리하였으나, 아직 번역본이 없다. 국가예산 지원을 못받아 본격적인 번역사업을 하지 못하고, 전북대 이재연구소가 고창군과 전북도의 미약한 보조금만으로 시급한 부분만 우선 부분번역하는 실정이다. 조선시대 연구에 참으로 중요한 자료인데도 국가번역사업 예산지원에서는 항상 밀리고 있는 게 여전한 차별의 현실이다.  ?
  황윤석은 공부를 위해 서울에 가서야 호남차별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항변하고 해소방안을 제시하였다. 조선후기 지역적으로 가장 차별받은 곳은 전라도였고, 그 근원은 정치적으로 관직인사에서 소외된 까닭에, 호남은 경제적으로 국가의 식량창고 역할을 하는 데도 홀대당했다. 호남인이 단결하지 못하여 얕잡아 보기 때문에, 영남인은 믿음직하고 호남인은 가볍다는 식의 악의적 편견이 날조되었다고 호남차별의 근거들이 잘못임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리고 네가지 해소방안을 제시하였다. 첫째, 하서 김인후같이 훌륭한 분을 문묘종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둘째, 호남의 인물, 사적을 도학, 문장, 충효, 정열로 편집하여 호남읍지 같은 책을 펴내자. 셋째, 호남의 중요 문집들을 간행하자. 넷째, 호남의 자랑스런 의병사를 편찬 배포하자는 것이다.
  요즘 말로 바꾸어 요약하자면, 전북의 자긍심을 일깨울 자랑스런 역사와 인물을 발굴하여 널리 교육시킬 것, 전북을 상징할 인물 즉, 대권주자 같은 상징적인 인물을 키워내 구심점으로 할 것, 전북학 연구로 전북발전의 콘텐츠를 발굴할 것, 전북 의병사, 독립운동사, 전북시민혁명사 등 자랑스런 역사를 교육하는 일 등을 제안한 것이다. 슬프게도 250년 전의 황윤석의 분노와 대안제시는 오늘날 전북정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선 김인후 같은 상징인물을 내세워 호남의 구심점으로 삼자는 황윤석의 탁견은 대선주자를 내라는 것이다.
  한국정치사를 주름잡은 전북은 현재도 대통령감이 많다. 찬찬히 한번 살펴보자. 언론에 거론되는 잠룡이라는 시장, 도지사급, 중진 국회의원들보다 경륜, 능력, 업적 면면에서 그들보다 훨씬 훌륭한 전북정치인이 많지 않은가? 우선 이 대선정국에서 전북의 대선주자를 키워내자. 우선 대선에 도전해야만 전북의 자존감이 살고 전북 몫을 주장할 수도 있다. 단독집권이 어려우면 연립정부라도 세우며 전북 몫을 확실히 챙겨야 한다. 전북 정치인이여! 도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아신다면 당당하게 도전하시라. 자존감에 목마른 도민들이 아낌없는 갈채와 추임새를 보낼 것이다. 도민들이여! 용기있게 도전하는 대선주자를 우리 전북인의 힘을 모아 큰 정치인으로 키워내십시다. 그래야 황윤석이 다시 살고 전북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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