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 사면

오피니언l승인2016.11.30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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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목 칠면조과에 속한 칠면조는 좀 생소한 동물이다. 머리에서 목에 걸쳐 피부가 드러난 외모부터 그렇다. 칠면조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은 이 피부의 색깔이 일곱 가지라는 사실에서다. 체구도 닭에 비해 아주 크다. 성질도 사납다. 문헌에는 칠면조가 늑대 무리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끝에 물리쳤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다. 지금도 사람이 성질을 건드리면 끝까지 쫓아와 덤벼든다. 오죽하면 벤자민 프랭클린은 남의 음식이나 뺏어먹는 독수리보다는 용감성이 특출난 칠면조를 국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원래는 아메리카 대륙의 넓은 범위에 걸쳐 서식하는 야생 조류다. 오래전부터 북미 원주민에 의해 사육됐는데 콜럼버스가 대륙을 발견한 뒤 유럽으로 가져가 전 세계에 보급됐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야생 칠면조는 어김없이 인간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유럽인들이 마구잡이로 사냥한 것이다. 과도한 사냥으로 한 때 멸종위기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은 자상한 보호조치로 예전 개체수를 회복했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칠면조하면 추수감사절 만찬이 떠오른다. 미국인들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앉아 칠면조 고기를 즐기는 풍습이 있다. 미국으로 처음 건너온 영국 청교도들이 1621년 첫 수확이 있은 뒤 칠면조를 잡아 나눠먹으며 유래한 관습이다. 영국 등에서는 추수감사절에 주로 거위를 먹는데 미국 이주자들은 이를 구할 수 없게 되자 꿩 대신 닭이라고 칠면조로 대체한 것이다.
  추수감사절은 칠면조들에게는 최악의 시기다. 우리나라가 복날 개를 잡아먹듯 미국인들은 가정마다 칠면조를 식탁에 올린다. 한 해 추수감사절 때 죽어나가는 칠면조가 5000만 마리라고 하니 혀가 내둘러진다.
  그런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 임기 중 마지막 칠면조 사면식을 거행했다. 오바마는 전국에서 인터넷 투표로 선정된 칠면조에게 “당신이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지 않도록 사면합니다”라고 행정명령을 내렸다. 백악관의 칠면조 사면은 링컨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행사라고 한다. 지금처럼 엄숙한 의식을 거행한 것은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불교신도들이 행하는 방생 행사를 연상케 하는 일이다. 하지만 억세게 운 좋은 이 칠면조의 앞날도 그리 밝지 않다고 한다. 추수감사절에 팔기 위해 축산업자들이 너무 살을 찌워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이다. 1년을 넘기기 힘들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대량 희생되는 칠면조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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