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당시 삼성그룹 총수이던 이건희 회장은 이른바 ‘신경영’을 선언했다. 자신이 직접 쓰고 선포한 삼성헌법이 주 내용이었다. 이 헌법에서 이 회장은 인간미와 도덕성, 에티켓, 예의범절을 강조했다. 수익 보다는 도덕성을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주문도 했다. 이 신경영 선포는 후일 ‘제2창업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붙었다.
  삼성의 변신은 항상 성공적이었다. 시대 조류를 잘 타는 결정이었다. 맨 처음 책임경영에서부터 시작해 인재 경영 - 신경영이 이어졌고 나중에는 상생 경영 - 창조 경영에까지 나아갔다.
  이런 때맞춘 혁신 덕분에 삼성은 그들의 자부심처럼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늘 거듭날 수 있었다.
  물론 세계 기업들과 연구 기관, 심지어는 정부들까지 삼성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경영학자들은 삼성이 그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동양과 서양의 경영 철학을 접목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미국 GE의 성과주의와 일본 도요타의 관리경영이 삼성에서 성공적으로 융합됐다는 식이다. 그러자 도요타가 삼성의 능력주의, 성과주의를 본 따기 시작했고 중국 등 아시아 기업들은 경영목표를 ‘삼성전자처럼 되는 것’으로 삼기도 했다. 이런 큰 흐름에는 ‘삼성의 길(SamSung' way)’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그 삼성이 지금 생사 갈림길에 섰다.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 7의 단종 사태가 부른 위기다. 배터리 발화로 세계 곳곳에서 말썽을 일으키자 삼성 측이 단종을 결정한 것이다. 당장 삼성전자는 2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를 2조6000억 원이나 낮췄다. 이를 놓고 안팎에서 자성론이 일었다. 1등주의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서 터진 참사라는 것이다. 상명하복의 구태의연한 기업문화가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고 애플과의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그간 취해온 ‘빠른 후발자’ 전략이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선두주자를 베껴가며 추적하는 방식이 이젠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조직의 비대화와 경직성이 발목을 잡는다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삼성의 또 한 번 변신은 불가피한 것 같다. ‘삼성 붕괴 시나리오’라는 책을 쓴 안광호 박사의 말이 언뜻 떠오른다.
  “삼성은 애플이 아니라 시대에 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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