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땅. 아니 불타는 땅이다. 그날도 햇살은 불처럼 뜨거웠고 땅은 불빛으로 물들어 이글거리고 있었다. 키 낮은 풀잎 뒤에 숨어있는 메뚜기가 정말 숨을 쉬는지조차도 확인할 수 없는 날이었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폭풍전야처럼 적막감이 감도는 예사스럽지 않은 공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바닥이 깊지 않은 가마솥 같기도 하고 혹은 키가 낮은 소쿠리 속 같기도 한 황토현 골짜기는 그 옛날 그때처럼 불길이 심장 한가운데서 솟아나듯 화끈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황토현인지도 모를 일이다.
 옅은 보라의 맑은 빛깔이 투명해 보이는 싱싱하고 청초한 무궁화 꽃이 담장에 턱을 괴고 낯선 이의 동태가 궁금한 듯 해맑은 얼굴로 넘겨다보고 있었다. 마치 초롱에 불을 켜고 있는 생김새를 하고 하필 담장 밖에서 들고 나는 이들의 의중을 살피듯 쳐다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외출을 멈추고 호흡을 다듬어 햇살을 받아내고 있는 한여름 속에서 등이 깊고 굵은 소나무 숲이 가득한 황토현의 동학전적지를 찾은 날이다. 이른 시간이었는데 정문에 다다르니 갑자기 전화기가 요란하게 괴성을 지르며 폭염주의를 알려온다. 황토현은 그렇게 엄정한 곳이었다. 어찌 한여름의 날씨 탓이라 할 것인가. 황토현은 언제나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열기가 가득한 곳이다.
 황토현(黃土峴)은 붉은 언덕이란 말이다. 산이라 부를 수도 없는 낮은 구릉들이 물결치듯 서쪽으로 서쪽으로 흘러가는 곳이 이 곳 전라도 땅이다. 전라도에는 한반도의 심장 호남평야라 일컫는 넓은 들이 있고, 이 땅은 동진강에서 물을 얻어 살아가고 있다. 동진(東津)은 동쪽나루라는 뜻이니, 아마도 서역사람들이 서해를 통해 태양신을 찾아 드는 나루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이 물에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는 생명들이 들고나는 곳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진강은 엄뫼산(모악산)의 치마 속에서 샘솟는 생명수의 흐름을 부르는 말이다. 이 생명수는 칠보 도원에서 출발한다. 칠보도 그렇거니와 도원(桃源)은 신들의 땅에서 솟는 성스러운 물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생명수는 태인을 지나고 이평에서 내장산의 의지를 가져온 정읍천을 만나 더욱 크게 흐른다. 붉은 땅은 이 물길들을 따라 살아간다. 사실 호남평야 대부분은 붉은 황토 빛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 황토 빛은 동진강 물을 먹는 대부분의 땅들이 그러하지만 이평, 덕천, 고부로 내려가며 무장으로 이어진다. 모두 모악과 내장이 만나 이룬 땅들이다. 그렇더라도 이 땅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붉은 빛을 하고 있었는지 그 까닭을 아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매우 오랫동안 어쩌면 이 땅이 태어나기 시작할 때부터 그러했을 터이며, 그것은 아마도 이미 깊이 숨겨진 비밀의 역사로 비롯된 것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 비밀의 연원을 얻어내는 일은 또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듯싶었다. 오래전부터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이곳에 터를 내고 많은 생명들을 거두고자 하였던 태양의 의지가 있었던 터였다.

 땅을 일구는 일은 사실 사람의 일이 아니었다. 엄뫼산의 생명수로 촉촉이 젖어있는 이곳 황토현에는 당연이 태양신이 내려와 살았다. 태양신의 놀이터였던 이곳에서는 봄이면 신들의 씨뿌리기 행사가 열렸으며 사람은 그 일을 대신하였다. 그래서 농사는 생명의 순환과 번식의 표상에 다름 아니었다. 동진강의 사명은 그래서 이 너른 땅의 생명들을 거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세기말 동진강에 기대어 살아왔던 붉은 땅의 분노는 거대한 불길이되었다. 그 불을 사람들은 동학이라 불렀다. 그들은 하늘을 우러르고 받들어 사람의 생명을 거두고자 하였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믿음과 천한 사람과 귀한 사람이 따로 없다는 신념을 지녔던 동학은 내 몸에 하늘을 담고 가난하고 소박한 백성들을 거두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의 존중함을 알아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절망은 황토현에서 불길이 되었다. 그 불길을 다른 이름으로 동학농민군이라 불렀다. 그러나 또 다르게는 하늘군사라 할 것이었다. 하늘군사는 붉은 땅 이곳저곳에서 들불처럼 솟아났다. 그들의 분노가 하늘에 닿았을 즈음 이들 하늘군사를 막기 위해 전라감영군이 황토현 정상에 올라 진을 쳤다한다. 하늘의 깊은 의중을 알 까닭이 없었던 그들이 신의 제단을 밟고 올라 선 것이었다. 어찌 사방에 시체들이 넘쳐나지 않았겠는가. 사람들은 그날의 시체가 1000여명에 달하였다고 하였다. 그 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 사건은 이 땅의 새로운 역사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것을 기록하는 이들이 이를 황토현전투라 불렀다. 그 날이 갑오년(1894) 4월 6일이었다. 하필이면 한창 씨뿌리기가 이루어지던 4월, 봄 한가운데에서였다. 어쩌면 이 땅이 이토록 붉은 것은 그 날의 전투 이후였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같은 백성이었고 모악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의 피가 혹은 영혼이 그리고 원망이 씻기지 않은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황토현은 실상 단숨에 오를 수 있는 35m 남짓밖에 안 되는 낮은 언덕이었다. 그렇더라도 무성한 소나무들로 감싸고 있는 등선은 듬직하고 매끄러웠다. 붉은 빛으로 잘 다듬은 천제(天祭)를 위한 제단 같은 곳이었다. 동쪽에서는 모악이 내려다보고 있고, 멀리 남쪽으로 마치 신기루처럼 모호하고 우직하게 바라보이는 두승산을 흠모하는 뜨거운 가슴을 품은 언덕이었다. 두승산은 또한 황토 위에 세워진 모악의 전령이었을 것이다.
 

황토현은 불씨가 되었던 동진강 만석보를 건너 705번 지방도로를 타고 덕천으로 들어서는 초입이었다. 키가 울타리가 된 옥수수가 유난스럽게 붉어 보이는 탄탄한 고추들을 거느리고 길을 따라 나서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으나 날카로운 햇살은 마치 분노의 화살을 쏘아대듯 피부에 박히고 있었다. 황토현은 그날도 연한 우윳빛 안개가 자욱하고, 알 듯 모를 듯한 미묘하고 신비스러운 향내를 품고 있었다. 마치 축제날 마당 한쪽에 걸친 가마솥에서 새 나오는 달큰한 국밥 냄새이기도 하고, 멍석에 둘러앉은 이웃들의 들리지 않는 웅성거림 같기도 하였다. 분명 전쟁터였을 이곳 기념관 앞 오목한 들판에는 더욱 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모든 생명들이 숨을 가볍게 하고 천재(天帝)의 이름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이 햇살로 가을을 준비하여 생명들을 거두라는 명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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