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피어난 소리꽃··· 세상을 얻고 사랑을 잃다

<전북예찬: 33.해어화 진채선, 소리로 피어나다.> 이철량 교수l승인2016.06.21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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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시간이 멀지도 않은 지난 1847년에 고창에는 꽃씨 하나가 떨어졌다. 아직 세상은 어둠이었다. 능소화가 화사했고 들녘에는 망초 꽃이 가득했어도 장마구름이 가득한 하늘처럼 막막하였던 세상이었다. 여자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랬던 시절에 고창에서는 특별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꽃이라면 한반도 여기저기 철따라 피는 것이어서 그리 별 다를게있을리 없겠으나 유독 고창에는 소리 꽃 하나가 피었다. 어쩌면 그 무렵이 능소화가 흐드러진 지금과 같은 때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한들 이곳 고창이 들이 넓고 바다가 가깝다는 것 외에 그리 색다르다 할 것이 없는 풍광이고 인심이었다. 그럼에도 유독 이 곳을 고창(高敞)이라 불려왔던 연유가 있었음을 헤아려야 하였다. 무엇이 그리 높고 높아 고창이라 하였을 까만은 그것은 그리 쉽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주 오래전 지난 8C무렵부터 고창이라 하였다하니 쉽게 생각해도 천년이다.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이후였다. 누구도 눈여겨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에 그 의지는 어쩌면 땅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변변하지 못하고 또한 인심이 넉넉하지 못하였던 시절에도 하늘을 쫒아 높이 피어올라야 했던 오래된 아주 오랫동안 준비된 사연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곳이 고창이었다. 그렇게 고창에는 우리 소리가 이른 아침 바다에서 연무가 피어나듯 조용하여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피어나고 있었다.
 소리가 사람을 구별하고 또한 사람의 신분을 구별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찌 그런 세상이 있었을까하고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사람의 신분이 엄격하던 세상에서 소리꾼의 서러움을 헤아리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도 사람냄새는 짙게 피어나고 또한 신화 같은 사랑도 익어 갔던 모양이다. 그런 에답고 절절한 사랑이 고창의 소리꾼들 속에서 그야말로 소리 사설속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커져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을 꽃이라 부른들 하등에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마치 곰소 항구 젓갈 통에서 피는 삭고 삭은 젓갈 향처럼 오랫동안 묵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꽃은 그처럼 사랑을 대신할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표상이 되었다. 꽃은 인간들에게 있어 사랑의 표상이고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꽃은 때로 닫힌 사랑의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또한 사랑의 결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설령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고운 것이 꽃이라 한들 사람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을 해어화라 불렀다. 해어화(解語花)는 꽃이로되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이다. 신재효는 제자 진채선을 그렇게 그리워하였다.

“스물네 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돌아오니. 귀경 가세 귀경 가세 도리화 귀경 가세. 도화는 곱게 붉고 흼도흴사 오얏꽃이. 꽃 가운데 꽃이 피니 그 꽃이 무슨 꽃고. 웃음 웃고 말을 하니 수렴궁의 해어환가. 해어화 거동 보소 아릿답고 고을시고. 현란하고 황홀하니 채색채자 분명하다. 도세장연 기이한 일 신선선자 그 아닌가”
신재효가 “도리화가”를 지어 부르고, 가슴속에서 피멍을 토해내듯 그리워하며 해어화라 불렀던 진채선(陳彩仙)이 꽃씨처럼 세상에 떨어졌으니 그해가 바로 1847년이었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특히 신분의 구별이 뚜렷하던 시절에 무당의 딸로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소리를 익혔다한다. 단골내가 불렀던 그 소리인들 어찌 제대로 된 소리였을까 마는 그래도 그 소리는 달랐던 모양이다. 또는 어려서 노래를 했던 관가의 기생이었다 하기도 하나 중요한 것은 그의 소리가 매우 뛰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다른 성음을 알아보았던 신재효 역시 이 나라 백성들의 소리를 위해 특별히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녀가 불렀던 서사무가 즉 단골무당들이 오래 전부터 불렀다는 소리는 그나마 소리모양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어린 채선을 그가 세운 최초의 판소리 학당 동리정사에 불러 소리를 제대로 가르친 것은 스승 신재효의 도전이고 사랑이며 실험이었을 것이다. 그렇듯 여성이 소리꾼이 된다는 것을 아직 준비된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승 신재효는 그렇게 채선을 어린 딸의 사랑스러운 머리칼을 곱게 빗어내듯 조심스럽게 다듬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 땅에서 최초의 여성 판소리꾼이 되었다. 그러나 스승은 소리만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린 채선에게 소리를 주었지만 한편으론 채선으로부터 사랑을 훔쳤다.

 스승 신재효의 사랑으로 자란 채선의 소리는 고창 하늘을 날아 더 큰 세상 한양으로 넘어갔다. 그 소리는 한양 궁궐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소리에 따라 경회루 추녀가 춤을 추듯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소리는 이제 더 이상 고창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 땅의 역사가 되어 다시는 스승의 가슴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소리가 되었다. 그래서 스승은 다만 먼발치에서 가슴으로 불렀다. “스물네 번 바람이 일어 헤어화가 피었다”고 하였다. “복숭아 꽃 붉게 피고, 오얏꽃도 하얗게 피었으나 꽃 중의 꽃은 해어화”라 하였다. 그는 알았다. 그녀는 이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큰 소리가 되었음을.. 그래서 가슴은 파랗게 멍이 들었고 몸은 겨우 지탱할 수 있을 뿐이었다. 더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최초의 여류 소리꾼이 된 사랑을 예전처럼 가슴에 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지난 시간은 마치 기적처럼 혹은 잠간 회오리처럼 지나갔던 신기루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채선의 소리는 신비 속에서 너울처럼 그의 가슴을 흔들고 떠나갔다. 그래도 그가 병들어 마지막 가는 길을 찾아 3년을 함께 하였다하니 실로 그 사랑은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훗날 그녀의 소리를 붙잡고 많은 후배 여류명창들이 배출되었던 것은 순전히 이 땅의 역사가 꾸민 잘 짜인 드라마였다 . 아무래도 고창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어화를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먼저 소리 천재 신재효를 보냈다. 세상에서 어찌 작은 바람하나라도 인과가 없을 리 있을까? 그것은 분명 천여 년 전부터 오랫동안 준비된 각본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아니 아마도 수천 년이래로 이 땅에 살아온 고단한 백성들을 위로하려 준비해 왔을 터였다. 이제 또 모양성 문밖 마을 담장 안에서 분홍빛 능소화가 화려하게 피었다. 아마도 장마를 이끌고 태풍이 오려나 보다. 어쩌면 채선이 태어나던 그 날도 능소화가 장마 가운데 먹구름 속에서 활짝 핀 오늘 같은 날이었을 것이다.              


이철량 교수  jeolla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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