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알이 깃든 영혼··· 지혜의 눈이 반짝이다

<전북예찬: 낭곡 최석환, 포도로 다시 살다.> 이철량 교수l승인2016.06.07l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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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곡 최석환(1808-?)은 참으로 신비한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그만큼 신기하게도 그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그처럼 사람들은 때로 알 수없는 어떤 세계에 매달리기도 한다. 어쩌면 어느 일부의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어디서 와서 결국에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 것이다. 아주 아주 오래된 사건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비밀 하나쯤은 가슴에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기실은 그 비밀이 서로 익히 알고있는 공개된 비밀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그것은 역시 우리 모두는 서로 각자 자신의 영혼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중 낭곡 최석환은 어떤 영혼을 가지고 살아갔는지 참으로 궁금하기 그지없다. 그는 매우 뛰어난 포도 그림을 남겨놓고 살아졌다. 마치 어떤 영혼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는 것처럼 그렇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그가 마치 귀신처럼 흔적도 없이 살아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미련 없이 그렇게 떠났다. 아마도 먼 훗날 어떤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올지 모른다는 믿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처럼 신비스러운 삶을 살았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자신의 영혼을 보기 위해 많은 곳을 기웃거릴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자신의 모습을 닮았을 것으로 보이는 어떤 불가시적 상대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자신의 초상을 닮은 어떤 신을 부둥켜안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가시적 상징들을 앞세워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석환은 아마도 포도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그의 포도그림에서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최석환 만큼 포도를 잘 그린 사람은 없다. 하기야 보기에 따라 평가가 달리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그만큼 포도를 실감나게 화면에 담아낸 사람은 없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도 최석환이 어찌하여 유독 포도 그림에서 그처럼 신기한 표현을 할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내력뿐만이 아니라 작품 외에 아예 자신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떠난 것이다. 그의 고향 임피가 원래 그처럼 알 수 없는 어떤 신비한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낭곡 최석환(浪谷 崔奭煥(1808-?)은 임피에서 살았다. 오직 오세창(1864-1953)이 쓴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이라는 책에 그가 “포도를 잘 그렸으며 전북 임피(臨陂)에 살았다”라고 기록된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치 仙人처럼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갔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에게 오직 그림으로만 삶의 의지를 엿볼 수 있도록 하고 떠났다. 그는 호를 낭곡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어려웠던 삶의 질곡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옥구 앞 바다 물결을 생각하게도 한다. 그러나 또한 그가 태어났던 임피의 자연풍광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임피는 동북쪽의 미륵산의 기운이 황등을 지나 고봉산을 거쳐 서해로 뻗어나가는 길목이다. 구릉은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 서해바다의 파도가 된 기름진 땅이다. 그가 굳이 스스로 낭곡이라 불렀던 것은 이처럼 그가 살았던 고향의 늠름하나 거세지 않고, 힘이 있으나 오만하지 않은 임피의 지세를 닮고자 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 속에서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참으로 포도를 잘 그렸다. 그는 포도를 실제로 관찰하고 그 생태적인 특징을 깊이 있게 이해하며 작품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다른 포도그림들 하고 다른 관찰이라 할 것이다. 낭곡은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이 포도를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전통적인 운필의 맛을 내고자 했던 태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포도그림은 훨씬 더 친근감이 있고 실제적인 감동을 준다. 작은 잔가지와 순의 실제적 모습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갈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이와 같은 사실적 감동이 짙게 나타나는 것과 함께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강열한 붓의 힘과 그 활용의 뛰어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포도의 큰 줄기를 일필에 의한 매우 굵고 진한 농묵(濃墨) 선을 사용하고 잎과 작은 가지들은 담묵(淡墨) 즉 연한 빛깔로 처리했다. 대범한 먹빛의 대비가 인상적인데다가 강한 농묵선이 마치 성난 파도처럼 힘찬 기세를 펼치고 있어서 화면에 는 알 수 없는 어떤 웅장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옆으로 긴 병풍그림은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임피 산형이 파도처럼 율동하는 형세 같기도 하다. 작은 포도그림 대부분은 급하게 회전하며 물결치는 형세를 하고 있어 그가 포도를 통해 그의 삶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즉 그의 포도 그림은 거의 대부분 우나 좌측 상단에서 반대방향으로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듯 거세게 회전하는 형국이 많다. 그의 분명하고 단호하며 엄정한 필세가 화면 전체를 휘돌아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음이다. 그럼에도 포도 잎은 매우 잔잔하고 단정하며 사실적이다. 마치 간지럽게 애교를 부리는 어린 소녀의 몸놀림처럼 연한 빛깔로 사랑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그가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 감동과 감상의 적절한 조화와 구성의 묘미를 터득하고 있었음이다. 천부적 재능이 아니고서야 이룰 수 없는 경지라 할 것이다.
 포도는 마치 부처님의 이마에서 빛나는 제3의 눈 즉 지혜의 눈처럼 반짝인다. 그 또한 뚜렷하고 선명한 농묵으로 윤기가 흐른다. 때로는 포도 알이 농묵과 담묵으로 구분되어 적절히 섞여있는데 한결 풍성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매달려 있다. 포도는 예부터 자식이 번성하고 풍족한 삶을 의미하였다. 일찍부터 사람들은 불가역적 삶을 의지하려 이처럼 포도에 자신을 묻고 투영하며 살았다. 낭곡은 당대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소망을 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제 또다시 6월이 되어 임피에는 포도가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어디 임피 뿐이랴 사실 이 땅 구석구석에서 퐁요가 맺히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철량 교수  jeolla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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