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한 복판에서 남북을 나누고 어떤 진한 비밀을 간직한 듯 서있는 내장산의 심중이 궁금하였다. 서해를 따라가며 길게 펼쳐져 있는 호남의 들녘을 굳이 둘로 갈라 뚜렷한 변화를 도모하였던 내장산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 비밀의 열쇠는 끝내 그의 이름 내장(內藏)에서 찾아야 할 듯했다. 과연 그는 무엇을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꼭 알아내야만 하는 어떤 보물찾기와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혹시 내장산 품에 들어있는 내장사나 혹은 백양사. 구암사 등에서 촛불의 연기처럼 잔잔히 울리는 불경(佛經)을 외는 소리는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어떤 내막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내밀한 속내를 품고 있는 내장산을 찾는 일은 항상 가슴 설레는 소명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내장산은 역시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고들 한다. 그러나 또한 많은 이들은 겨울의 내장산을 잊지 못한다고도 하였다. 가을은 곧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고, 겨울은 또한 오늘과 같은 봄빛을 여는 길목이기도 하여 내장산은 사철 언제나 우아하고 고상하다. 봄볕이라 하나 아직 잔설이 아침 햇살에 세수를 마친 듯 눈부시고 어스름히 피어있는 잔가지의 서리꽃이 내장산의 순결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차라리 성스럽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그렇더라도 내장산은 역시 가을 단풍이 세상에서 으뜸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내장산이 단풍으로 상징되는 것은 분명 특별한 하늘 코드가 담겨있다고 보아야 한다. 단풍(丹楓)나무는 곧 신목(神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풍나무를 붉은 바람나무라는 뜻으로 읽어야 하고, 붉은 빛깔은 태양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바람은 신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나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하늘 코드는 단풍잎의 형태에서도 찾아진다. 마치 다섯 손가락을 펼친 손바닥의 모습으로서 별모양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다섯 갈래 모양의 별이 손의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추정은 아주 오래 된 옛사람들의 도상(圖上)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역서(易書)가 손바닥을 읽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주의할 만하다. 그래서 단풍나무를 우주목(宇宙木)이라 불러도 다를 것이 없다. 내장산이 하늘의 어떤 의지를 품고 호남의 한 가운데 서있는 연유를 알 듯하다. 이러한 내장산의 속뜻을 읽으려면 아무래도 그의 품에 깊숙이 들어가 보아야 한다.

내장산은 실상 760여 미터로서 실제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럼에도 만경들녁에서 바라보이는 그 자태가 엄정하고 웅장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 속마음은 평온하고 여유롭다. 동쪽으로 백방산 그리고 서쪽 편에 백암산을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추월산과 마주보며 한 몸을 이루듯 서있다. 그리고 그 품안에 하늘정원이라 할 복흥이 있다. 이들 높고 낮은 산봉들이 어깨를 맞잡고 만들어낸 마치 귀 속 같기도 하고 혹은 나이가 오래된 우렁 속 같기도 한 비밀스러운 공간, 그곳이 순창 복흥이다. 복흥은 내장산이 깊숙이 감추어둔 비밀정원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감추어둔 신주단지(神主團地)였던 것이다. 복흥(福興)은 그 이름이 알려주듯 호남에 큰 덕을 내려줄 것으로 예정했던 신들의 영역이다. 그것은 마치 지중해 신들의 놀이터였던 올림포스와 같은 곳이라 할 것이다. 복흥은 신들의 놀이터였으며 또한 신들을 위한 제단과 같은 자리로서 마련해 놓은 곳이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발길을 외면하였었다.

그 비밀정원은 네 개의 문을 가지고 있다. 정읍에서 오를 수 있는 북문, 장성에서 드는 서문 그리고 담양에서 오르는 남문과 순창에서 들어갈 수 있는 동문이 그것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들 네 곳의 험난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지금이니까 그렇지 옛 사람들은 아흔아홉 구비 험한 고개를 걷고 또 걸었었다. 그곳에는 얼마간의 양질의 옥토가 촉촉한 기운을 담아 작은 들을 이루고 있다. 내장산 신선봉에서 내려와 신선놀음하기에 딱 좋은 양지바른 들이다.

내장산은 우주목들로 가득한 태양신의 상징이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주보는 추월산(秋月山)은 이름에서 말하듯 달을 의미한다. 추월은 가을의 달이라는 뜻이겠지만 실상은 만월(滿月)로서 가득 찬 보름달로 읽어야 한다. 풍만한 여신의 상징이다. 내장산의 심중은 비밀정원에 가득 담겨있는데 그 심장 한가운데에 작은 화개산(華蓋山)이 있다. 이 화개산은 내장의 어깨로 불리는 신선봉에서 놀던 신선들이 내려와 자리 잡았던 곳이다. 그리고 그 산자락 끝에 동산(東山)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내장산이 처음 해를 받는 동쪽 첫 지점일 것이다. 그 자리에는 지금 거대한 느티나무인 신단수(神檀樹)가 서있다. 신단수는 신들의 씨받이가 이루어지던 곳이어서 동산에 신단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화개산 좌우는 화양(華陽)과 봉덕(鳳德)이 있다. 사실 이 땅 어느 곳인들 신들의 것이 아닌 곳이 있을까마는 이곳 복흥은 특별히 신들의 세상이었음을 알게 하는 이름들이다.

이곳 비밀정원에서는 아마도 특별한 행사가 열렸을 터이다. 언제나 신들의 놀이는 비밀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비밀스런 놀이는 틀림없이 신들의 씨뿌리기 행사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내장산과 추월산이 만나는 일이다. 음. 양의 만남이 씨뿌리기 행사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농사 일이 천하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라 했다. 그 일은 동산의 신단수 아래에서 이루어져 추령천으로 내려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들은 농암리(農巖里) 앞 들녘에서 수확되었을 것이다. 이곳이 신들의 씨뿌리기의 비밀행사가 있었던 곳이었음은 복흥의 동, 서쪽에 성문처럼 서있는 백암산과 백방산에서 더욱 확인된다. 백방산(柏芳山)은 잣나무가 많아 잣 향기가 그윽했다는 이름이고, 백암산(白巖山) 골짜기는 비자나무가 무성하였다. 잣이나 비자는 그 생김새가 비슷하고 특별하여 신들의 열매 즉 신들의 씨를 상징하였다. 이곳 신들의 정원에서 받아진 씨앗들은 네 개의 문을 넘어 순창. 정읍, 담양, 장성 등으로 넘어가 호남의 곳곳에 뿌려졌을 것이었다. 복흥의 한 가운데를 관통해 흐르는 추령천은 마치 내장산의 정액처럼 맑게 흘러 옥정호에 담겨진다. 하늘정원처럼 높이 떠 있는 신들의 비밀정원 복흥은 지금 신들의 씨뿌리기가 한창일지도 모른다. 파종의 시간 3월 초입에 내린 부드러운 봄비가 복흥 산골에서 뽀얀 안개를 가득 피우고 있는 모습을 옛 사람들이 지적한 운우지사(雲雨之事) 즉 신들의 씨뿌리기로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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