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혁신을 ‘새로운 가치와 고객만족의 창조’라 정의했다. 이 정의는 기업 뿐 아니라 여타 혁신주체에 두루 적용가능한데, 국가는  국민의 만족을, 개인은 자신을 포함한 가족, 동료 등 주위사람의 만족을 창조하는 것이 혁신의 요체라 할 것이다.

혁신의 길은 험난하다. 심지어는 혁신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혁명이 체제와 주체를 전복하는 것인 반면, 혁신은 체제 안에서 구조나 상황을 뜯어고쳐 새롭게 하는 것인데도 혁신의 실현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극단적 사례지만, 성 정체성 혼란에 빠진 남성이 있다친다면, 이 사람이 온갖 노력으로 남성성을 되찾는 것(혁신)보다, 차라리 성 전환수술을 통해 여성으로 변하는 편(혁명)이 쉽다는 것이다.

이처럼 혁신이 어려운 이유는 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사회의 혁신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기득권이다. 기업 지배구조, 노동, 연금, 복지 등 여러 부문에서 정부가 야심차게 시도하는 개혁들이 결국 좌초하고 마는 것은 바로 기득권이라는 암초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을 외면하고 계속 뒤로 미룬 사회가 결국 혁명으로 결딴나고 마는 장면을 역사는 생생히 기록해 왔다. 프랑스?러시아 혁명, 그리고 멀리 갈 것 없이 4?19혁명이 그렇다.

기업혁신의 최대 장애물은 관성이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잘  나갈 땐 자만하기 십상이다. 자만은 변화에의 저항과 동의어다. 그러나 기업수명이 날로 단축되는 기하급수 경제 시대에 순간의 거만은 영원한 몰락을 낳는다. 그만큼 고객들의 눈이 하늘만큼 높아졌고, 경쟁은 광속으로 가열되고 있다.

개인혁신을 가로막는 주범은 습관이다. 누구나 자기혁신을 간절히 바라건만, 뿌리 뽑기 힘든 습관 때문에 절망하고 분노한다. 흡연, 과음, 과식, 늦잠, 나태, 불안... 이런 요소들이 자아혁신을 방해하는 범인들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나쁜 습관의 고리를 끊고 좋은 습관에 길들여지는 것, 그게 바로 혁신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평소의 스트레스 해소 방식이었던 폭음폭식을 운동이나 예술 활동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혁신은 이루어진 것이다. 지방간과 비만에 찌든 병적 인간이 건강과 정서를 겸비한 건실한 인간으로 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기업, 개인을 막론하고 혁신의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와 고통 그리고 결단이 요구된다. 그래서 혁신은 지난한 일이지만 가슴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인고의 피안에 희망과 성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막힌 맛을 음미하기 위해 우리는 일신 우 일신(日新 又 日新), 혁신 또 혁신한다. 힘들고 새로운 일이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곧  지혜의 샘을 찾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자아혁신의 한 방편으로 18C 일본 운명학자 미즈노 남보쿠의 ‘절제의 성공학’을 소개한다. 술, 도박, 옥살이를 전전해온 그는 우여곡절 끝에 관상을 공부한다. 이발소, 목욕탕, 화장터에서 각 3년씩 일하면서 관상, 인체, 골격을 관찰한 뒤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운명은 오직 음식 하나에 달렸다.” 소식(小食)은 절제의 다른 표현이고, 절제는 성공의 어머니니, 소식하는 자가 성공한다는 삼단논법이다. 믿거나 말거나, 실천 여부는 독자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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