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당신은 지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한 말이다. 지난 13년...그리 짧지도 않은 세월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훌쩍 가버린 시간이었다.

21세기 들어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아트센터로 건립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운영방식도 남달라 공공 지원은 하되 자율성을 부여하는 행정 거버넌스의 가치를 담은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에 따라 민간위탁제도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그 매력에 끌려 학교법인 예원예술대학교가 수탁을 신청할 때 경영자 제의를 받아 참가하게 됐다. 수탁 공모에 통과되어 전주 생활을 시작한 때가 40대 중반을 넘는 시기였는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넘어 중년의 전환점에 섰으니 감회가 넘친다.

2002년 12월 25일, 성탄절인 그날 전주에는 수십 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새해 새로운 수탁 출범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전라북도와 현안 조율을 하고 있었다.

처음 와보는 전주의 겨울 정경은 전날 내린 소담스런 눈 때문인지 푸근하면서도 고즈넉한 북유럽의 도시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새롭게 맞게 될 경영의 책임에 대한 무거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낯설고 물설은 객지에서 규모 있는 복합아트센터를 관점이 다를 수 있는 관료문화와 접하며 민간의 자율적 책임성을 감당해야 하는 도전의 출발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언 13년이 일순처럼 지나 이번에 새롭게 선정된 수탁기관도 똑같은 위치에 있을 것이다. 누구나 무슨 일이든 새롭게 출발을 하게 될 때면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 또 소망으로 넘치게 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임에 대한 부담감도 갖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난 13년, 분명한 것은 학계를 비롯하여 전문가 사회가 우리나라에서 민간위탁의 한계성을 지적하며 소리문화의전당의 민간 운영을 우려의 시각으로 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리문화의전당은 민간위탁 시스템으로서 갖는 구조적 단점도 있지만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특장을 살린 자율 주도 전문운영체계로 정착됐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달지 않는다.

아마 그동안 안정적 운영의 풍토가 되지 않았다면 소리문화의전당의 민간위탁제도는 이미 여건과 환경에 따라 다른 체계로 벌써 전환되는 빌미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관 후 1년 여 외지 임의단체가 수탁을 맡아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어 재공모를 통해 현 수탁기관이 맡아 13년을 운영하며 정착시킨 것은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문화부장관상 5회, 전라북도 경영평가 6회 연속 우수기관 선정 등은 조직의 성장요소인 ‘지속적 안정’이라는 큰 틀을 구축시켰다는 객관적 방증이기도 하다. 그동안 중앙과 연계되어 전국적인 위상과 경쟁력,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킹을 확보했다는 것은 소리문화의전당의 강점이 될 수 있다.

물론 미흡한 부분도,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새로운 수탁기관이 감당해야 할 몫이며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하는 당위성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제 어디에 있던 전북과 전주는 소중한 사회적 고향이 되었다. 예술경영자로서 13년 동안의 활동기회를 주었던 전북을 어찌 잊을 것인가. 공공 문화예술시설의 경영자로서 학연, 지연, 혈연 등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지역에서의 활동은 어쩌면 자신과의 지난한 고독의 연속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북아 고맙다. 또 자신에게도 감사하다. 그 고독감을 ‘고독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자연의 사계절이 52번이나 변하는, 중국 노자의 말대로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폭넓은 사색과 전문 분야 자기계발을 통해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긍정의 힘’을 창생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니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빌 게이츠는 “세월은 만인에게 주어진 자본금이다. 이 자본을 잘 이용한 자가 승리한다”고 했다. 인생의 여정에서 13년이라는 세월의 자본금을 마련해준 소리문화의전당과 학교법인 예원예술대학교, 그리고 전북도민과 문화예술인 모든 분들께 오직 감사할 뿐이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