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깊은 산사를 찾기에는 이른 아침이 좋다. 그것도 조금 더 빠른 시간이면 더욱 좋다. 아침 풀냄새가 막 피어나기 시작하고 가을 안개가 스멀거리기 시작할 즈음 산사의 마당은 참으로 다른 세상이다. 짙은 향내가 가슴을 파고드는데, 간간이 울리는 풍경소리는 아직 늦잠에 젖어있는 게으른 중생들을 깨우고 있다. 부지런한 아침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헤집고 눅눅한 대지를 어루만지는 모습은 성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을 물빛이 막 젖기 시작하는 산중, 이른 예불을 끝낸 금산사의 아침 공기도 분주하기만 하였다. 이제 막 세상이 열리기 시작하는 기운으로 가득하였다. 그것은 맑은 아침공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금산사에는 또 미륵이 내려온 탓인 게다.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돌부처에 잠시 눈인사를 마치고 금산교를 건너니 꽃무릇이 하나 둘씩 서성거리며 맞아주었다. 이들 꽃무릇은 일주문 앞에서 무리지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을 대동하고 들어서는 금산사의 가을 아침은 감동이었다. 가을, 그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넉넉하고 뿌듯한 느낌을 주는지 모른다. 분명 이처럼 꽃무릇이 만발한 모습에서 가을은 이미 모악의 품안에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모악산 어깨를 짚고 넘어서는 아침 햇살은 늙은 벚나무 발밑에 보석을 뿌리고 있었다. 그것들을 주워 담으려는 듯 마치 9월의 신부만큼이나 가벼운 안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벌레, 새소리들이 뒤 쫒아 다니며 이른 아침을 엮어가고 있는 금산사였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해탈교까지 따라나서는 꽃무릇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하려는지 잔잔하게 울려주는 계곡 물소리가 가슴깊이 스며드는 금산사였다. 그것은 아마도 미륵의 음성인 듯싶었다. 이 가을에는 금산사에 미륵이 오신다. 미륵을 만나려면 역시 해탈교를 먼저 건너야 하였다. 이제 미륵의 세상 도솔천에 드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시 금강문을 지나고 또 천왕들의 심사를 거쳐 보제루에 올라야 비로소 미륵의 품안에 안기는 것이다.

모악산 품안에 깊이 들어있는 것을 왜 금산(金山)이라 했는지 알 듯도 하다. 아마도 성스런 산. 가장 고운 산이라는 뜻일 게다. 그래서 금산사라 했을 터이다. 금산사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비롯해 석가모니 부처도 계시지만 이곳은 특별히 미륵의 세상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사실 금산사는 모악과 일직선에 서 있는 미륵전이 본전(本殿)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먼발치로 마주하고 있는 미륵산 아래 미륵사에 머물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미륵사는 미륵을 다시 모시기 위해 터를 다듬느라 분주하지만 이곳 금산사 미륵전은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답다. 아침 햇살이 이제 막 미륵전 목덜미를 감싸 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새벽예불의 목탁소리를 받으려는 시간이었다. 3층이나 되는 전각이 앞마당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대적광전의 석가모니불에게 아침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미륵은 인도 바라나시국에서 석가모니에게 설법을 듣고 미래에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기 위해 오시기로 하였다한다. 그 때가 56억 7천만년이 지나서라 하나 금산사 미륵은 이 가을에 오신게 분명하다. 이곳 금산사 미륵전은 국보62호로 지정되어 그 위용을 자랑할 만하지만 그런 이름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것이다. 이 미륵전은 국내 유일한 3층 목조 전각인데, 1층은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미륵전(彌勒殿)으로 구분지어 현판을 달았다. 셋이면서 하나가 되는 우리 전통적 3위(位) 개념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미륵불의 세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륵은 자비의 부처이며 부처를 상징하는 용화수 아래에서 법회를 열어 모든 중생을 부처로 구제하는 미륵의 거처라는 뜻이다. 우리의 하나이면서 또한 셋이 되는 쌈지기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자태가 엄정하고 골격은 뚜렷하다. 다리는 근육이 잘 잡힌 아름드리나무를 세웠다. 좌우 날개가 선명하고 준수한 외모를 지녔다. 미륵의 모습이리라. 건물 외벽에는 아름다운 모습의 여러 보살과 신 그리고 불자들의 수도하는 모습 등이 처마아래 여러 아름다운 단청과 함께 신비롭게 그려져 있다. 건물 안은 3층까지 하나의 공간으로 처리된 통층 형식인데 11.82m나 되는 거구의 미륵불이 2명의 협시불을 거느리고 곧 마당으로 내려올 듯 한 모습으로 서있다. 부처와 잠시 눈을 맞추고 주변을 돌아보니 아침 햇살은 어느새 너른 마당에 가득한데 뒤따라온 꽃무릇들이 법당 뒷켠에 서서 숙연하게 기도하고 있다. 마치 한이 많은 중생들 마냥 처연하기 그지없다. 아마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이 꽃무릇을 상사화(相思花)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여 가슴앓이가 깊은 이름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마치 세상을 향해 한을 토해내듯 선연한 핏빛으로 피어난다. 그리고 그의 핏물은 작은 물길이 되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흐르며 또한 뭇 중생들을 어루만진다. 그것이 미륵의 마음이었다. 금산교회가 이물을 먹었고, 증산교도 또한 이 물에 몸을 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직도 미륵의 손길을 기다리며 금산교 앞에서 수천 년을 기다리는 돌부처가 애처로웠다. 누추하고 좁은 전각 안에서 실로 오랜 세월 몸을 가꿨다. 어디 그뿐인가. 옆 느티나무 아래 촛불을 밝히고 기다리는 초라하고 남루한 이름 없는 신앙도 미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을 살갑게 어루만지며 흐르는 물길은 금평저수지에서 잠시 머물다 넓디넓은 김제평야를 적신다. 김제평야는 지금 가을이다. 막 물들기 시작한 가을빛이 평야를 넘쳐 사방으로 흘러든다. 김제평야의 가을 물결은 풍요의 표상이다. 꽃무릇의 염원이고 한이 젖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미륵의 소망이고 모악의 염려에 다름 아니다. 모악의 발아래 펼쳐진 이 가을의 넉넉함은 이미 미륵이 우리 앞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새 56억 7천만년이 훌쩍 지나갔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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