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우리나라는 TV 드라마 전성시대였다. ‘사랑이 뭐길래’나 ‘여명의 눈동자’와 같은 인기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점령하던 시기였다. 당시 조사에 의하면 1가구당 평균 TV 시청시간은 5시간 33분이었고 1인당 평균은 2시간 35분이었다. 웬만한 가정이면 저녁 시간을 대부분 TV 앞에서 보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드라마 중독증에 걸렸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 붐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드라마 형식의 광고다. 드라마나 영화를 연상케 하는 CF들이 대거 선을 보였던 것이다. 경동 보일러의 ‘아버님께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라는 카피나 오리온 ‘정’시리즈, 고향의 맛 ‘다시다’ 등은 대표적인 예다. 이런 광고들은 인물과 스토리, 연기, 갈등 상황 등 드라마가 갖고 있는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었다.
  이런 패턴의 광고는 이후에도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며 브라운관을 누볐다. 인기 스타를 출연시키고 거기에 그럴듯한 스토리를 입힌 드라마 광고는 다른 어떤 기법보다도 대중설득 효과가 높았다.
  이미 드라마 광고의 위력은 각종 연구결과로 뒷받침 되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인물과 줄거리를 사용하는 광고는 제품 우수성을 주장하는 설명식 광고보다 품질에 대한 논쟁이 더 적다고 한다. 즉 드라마 형식을 차용하는 CF의 경우 인물과 스토리에 더 관심을 쓰는 바람에 정작 제품의 질은 뒷전이라는 것이다. 다소 품질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비싸더라도 재미있는 드라마 형식 빌린 광고를 하는 제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요즘 TV는 드라마나 영화를 연상시키는 블록버스터급 광고가 넘쳐나고 또 그 인기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고 한다. SK 텔레콤의 ‘이상하다’시리즈와 카카오 택시, 음식배달 서비스인 요기요 등이 바로 주인공들이다. 이상하다 시리즈는 만약 조선시대 휴대전화가 있었더라면 하는 가정 아래 흥미진진한 상황들을 마치 드라마처럼 그리고 있다. 그 재미에 빠진 소비자들 가운데서는 아예 광고 자체를 다운 받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하루 보통 3000여건의 광고메시지를 접한다고 한다. 광고의 홍수시대다. 더욱이 광고 제작 기법이 발전하면서 고단수로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유혹하고 있다. 이른바 감성 마케팅으로의 진화다. 이런 정교한 기업들의 판매 전술에 소비자들이 안 넘어간다면 이상하다. 그렇지 않아도 드라마를 과소비하는 우리 시청자들이 이번에는 광고 공세에도 맥 못추는 형국이고 보니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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